경주를 한 번이라도 와 본 관광객에게 ‘경주’하면 떠오르는 가장 분명한 기억은 무엇일까? 아마도 불국사 아니면 첨성대일 것이다. 불국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고 첨성대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유적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전에 만든 천문대라는 설명도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경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메카였던 도시다.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하면 딱히 갈 만한 곳이 없던 시대, 경주는 대한민국 역사와 ‘통일’이라는 그 시대 아젠다를 충족시키는 유일한 여행지였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경주 수학여행이 장려됐을 것이다.
경주를 다녀간 학생들의 추억담을 들어보면 교과서에서 첨성대를 처음 본 그 시대 학생들은 실물 첨성대를 보고 다소 실망했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높이 9.5m 정도로 1400년 넘게 지탱해온 명성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졌을 법하다. 거기에다 천문대라면 으레 높은 산이나 높은 단 위에 만들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평지에 작게 축조된 첨성대를 더 하찮게 보는 시각이 됐을지도 모른다. 해방 이후 첨성대에 대해 ‘제단’이니 불교 관련 건축물이니 하는 이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역시 바로 이런 평지의 작은 구조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천의 유명 페부커 정윤영 씨가 학창시절 첨성대를 만난 이후 무려 55년 만에 다시 경주를 찾아 첨성대 앞에 선 소감을 밝혔다. 55년 전이면 첨성대 주변이 온통 논으로 둘러싸였고 지금처럼 포장로도 없었을 때이니 첨성대가 더 초라해 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학생들의 첨성대 경사면으로 기어올라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한 사람 나무라거나 제지하지도 않을 때였다. 가뜩이나 작은 첨성대가 더 위축되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50년 지나 첨성대를 다시 마주한 정윤영 씨 눈에는 첨성대가 예쁘고 자랑스럽게 보인다. 아내의 허리 시술로 울산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런 첨성대였으니 착잡한 심경이었을 수 있지만 첨성대의 단단한 모습에 힘을 얻지는 않았을까? 55년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아주는 첨성대는 비록 체구는 작을지 몰라도 우리 국민들의 심상(心想)에 가장 친근하게 각인된 경주의 이미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