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경주는 고향이자 정신적 지주인 도시다. 로마를 능가하는 수 천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아주 특별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그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핫하게 성장하고 있는 지방의 중소도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출향인이 나오는 TV프로로 인해 황리단길의 특수성이 부각되고 코로나로 인해 반짝 특수를 누리는 관광도시, 사방팔방으로 도시개발을 하다가 만, 소멸되는 도시 같은 느낌에 늘 마음 한쪽이 무겁다. 한쪽 거리는 외국인의 거리가 된 듯 내왕이 안 되어 낯설다. 경주에는 아흔 넘으신 아버지와 여든 후반의 어머니가 계셔서 매달 2~3번씩 경주를 찾고 있다. 경주는 필자가 20세까지 자라며 시간을 보냈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현재 50대 중반이니 30여 년을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출향인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경주의 모습은 다분히 안쓰럽다. 필자가 경주에서 교육받은 내용은 신라의 후예, 화랑의 정신, 삼국통일, 유적지 많은 관광도시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 자부심은 고향 떠난 지금도 내 정신세계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공부건 일이건 주도권을 행사하고 협상을 하며 비즈니스도 그렇게 해왔다. 필자는 고등학교까지 경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대학은 대구에서 보냈고 대학원과 직장생활은 서울에서 하고 있다. 우리나라 포털지도나 네비게이션에 쓰이는 주소정보는 모두 필자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바꾼 정보시스템을 경주 출향인이 만들고 발전시켜왔다. 그만큼 경주출향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다. 대기업과의 싸움, 내부의 배신, 기업회생과 극복 등 기업인들이 흔하게 겪는 기업 스토리지만 경주정신을 가진 기업인이라 가능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경주 출신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필자의 멘토 중 한 분이 경주사람들은 개개인은 매우 훌륭하나 함께 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고 필자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젊을 때 나는 동의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출향인으로서 바라보는 경주의 보완해야 할 요소를 몇가지 적어 본다. 첫째. 문화적 다양성이다. 신라의 모습은 아랍인 처용에 대한 이야기와 로마와 교류를 했던 찬란한 유적이 나오지만 현재 경주의 모습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원만히 교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백인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유색인종이나 동남아계열 노동자들에게는 지역민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역 내부도 마찬가지다. 특정 학교 출신만 도드라져 보이는 모습이다. 필자는 특정 학교를 나와서 의식하지 못했지만 나이 들면서 그 불편함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는 것 같다. 신라인의 정신은 포용과 협력인데 처음 이야기 한 부분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둘째. 지역의 중심성과 확장성이다. 물리적인 부분으로는 도심에 있던 경주역의 이전으로 인해 구도심의 쇠락은 가속화할 것이 뻔해졌다. 도심의 큰 교통축이 외곽으로 이전해 지역민의 삶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수원 본사가 외곽에 홀로 존재해 유치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지역사회와 동화되지도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지도 못했다. 경주포항공항으로 이름을 바꾼 만큼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해 확장성을 키워야 한다. 셋째. 방폐장이다. 방폐장 유치를 통해 한수원을 유치했지만 애초에 약속했던 저준위방사선폐기물뿐만 아니라 고준위 폐기물도 밀려 들어오고 있다. 활성단층으로 최근 지진을 경험한 경주는 후손들에게 큰 어려움을 줄지도 모른다. 이 방폐장에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넷째. 지역대학이다. 3개의 4년제 대학이 있지만 모두 사립이어서 비싼 학비를 대면서 경주까지 오지 않는다. 그나마 한 대학은 재정자립도가 낮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만들고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도시 전체가 나서야 한다. 지역의 대학을 국립으로 전환하거나 공공의대 같은 국립특화대학을 유치하면 좋을 것 같다. 다섯째. 쇠락하고 소멸하는 도시에 사는 노인과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다. 노인에 대한 존경과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큰 소명이다. 이들이 우리의 현재이자 과거이고 미래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현재 대통령선거로 온 세상이 들 떠 있다. 2달 뒤에는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을 선출한다. 2022년, 오미크론 변종 코로나로 시작해서 혼란하다. 대통령선거와 지방 선거를 통해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출향인은 고향이 발전하기 바란다. 경주시민이 지성의 힘을 발휘해 국가와 지역을 위해 더 헌신하고 봉사할 동량을 뽑기 바란다. 그들이 우리 경주를 특색있고 살만한 도시로 만들어주면 더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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