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자전
신철규
지구 속은 눈몰로 가득 차 있다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간 건물들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속살을 파고드는 칼날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혀 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둥글게 툭툭,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사과 조각을 넣어준다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정념의 공감능력에서 보이는 “그들”과 “우리”의 차이
젊은 부부는 흔히 어린 자녀에게 “엄마 아빠를 얼마만큼 사랑해?” 이렇게 묻곤 한다. 그러면 이제 겨우 말을 더듬는 어린것이 양팔을 펼치면서 “하늘만큼 땅만큼” 이렇게 외친다. 이 때 입에 걸리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이 시에서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가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하고 “지구만큼 슬펐다고” 답하는 인터뷰가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시인은 얼른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라는 진술로 화답한다.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리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 아이의 어머니,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 아이. ‘그녀’ 마음의 상처는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처럼 찔린다. 그래도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은 평정을 유지하는 그녀의 얼굴, 그러나 이도 오래 가지 못한다. 발설하지 않은 슬픔은 그녀 눈동자 속에서 오래 구르다, “혀끝에” 매달려 있다”, “둥글게 툭툭,” 떨어진다. 시인은 그들이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서로의 입속에/사과 조각을 넣어”주는 것을 본다.
그런데 시인은 이를 “그들은”이란 말 대신에 우리는”이라 쓴다. 전까지 “그녀는”, “아이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다가, 7연, 8연에서 시인은 왜 “그들은” 대신 “우리는”이라는 주체를 사용할까? 두 연에서 사용되는 “우리는”의 차이는 없을까? 자세히 보면 서로의 입 속에 사과를 넣어주는 모녀(혹은 모자)를 “우리”라고 쓸 때 시인은 심리적으로 이미 그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하나는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연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에 이르면 시적 화자와 그들은 이미 같은 시공간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더 정확히 말하자. 그들과 함께 공전하기 시작한다.
시인은 고통받는 타인의 몸을 자신과 겹쳐놓는다. 미디어가 보여준 고통인데도 이를 내면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시인의 공감능력이 보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