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입춘(立春)이었다.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에는 예로부터 경사, 평안, 풍년, 장수 등의 내용을 쓴 글씨를 대문에 붙여 봄이 오는 것을 기념하곤 했다. 한옥의 대문이 아파트 현관문으로 바뀌긴 했지만, 요즘에도 입춘대길(立春大吉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다), 건양다경(建陽多慶 따스한 날을 맞이하여 경사스러운 일이 많다) 등을 써 붙여놓은 입춘첩을 볼 수 있다. 경복궁 내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매년 입춘을 기념하기 위해 오촌댁(梧村宅)에서 입춘첩을 직접 쓰고, 대문에 붙이는 행사를 진행해왔다. 1848년에 상량한 이 고택은 2009년 경북 영덕에서 그대로 박물관 앞 야외전시장으로 이전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는 기회가 닿아 내가 이곳에서 입춘첩을 쓰게 되었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새움이라도 하듯 행사 당일 날씨가 매서웠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바람까지 부니, 체감온도는 더 낮은 듯했다. 연출을 위해 일상복을 벗고, 한복 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마지막으로 두루마기를 걸쳤다. 두꺼운 패딩을 벗어서인지 오촌댁에 들어서자마자 짜릿짜릿한 찬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청마루에 모포를 두껍게 깔고, 글씨를 쓸 수 있게 붓, 먹, 벼루, 종이 등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난 후 붓을 들었다. 냉기가 서려 있는 대청마루에서 글씨를 쓰려니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들었고, 손은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집중하여 입춘첩 몇 장을 완성하였다. 입춘첩을 붙이러 오촌댁 대문으로 나갔는데 스무여 명 남짓의 언론사의 취재와 촬영으로 시간이 꽤 걸렸다. 그중 한 신문사에서 입춘첩 쓰는 것을 따로 동영상으로 찍고 싶어 해 다시 대청마루에 올랐다. 글씨를 다시 쓰려고 했을 때, 벼루의 먹물이 살얼음처럼 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붓도 살짝 얼어 있었다. 밖으로 나갔다 들어온 지 30분쯤 지났던 걸까. 그 사이 먹물이 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붓을 움직일 수 없었다. 급히 뜨거운 물을 구해 먹물을 녹여 간신히 영상 촬영을 마무리했다. 일전에 조선시대 편지를 읽던 중 어느 선비가 한겨울 맹추위에 먹물이 얼어 글씨를 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때에는 먹물이 어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막상 내가 경험해 보니, 먹물이 얼 정도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간찰을 썼을 옛 선비의 모습이 비로소 헤아려졌다. 대청마루에서 살짝 언 먹물을 발견한 것처럼, 삶의 어떤 순간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지금껏 글씨를 쓰면서 먹물이 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씨는 반드시 따듯한 실내에서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와 다른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처했을 때, 심신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처음 겪는 펜데믹 속에서 무거운 보호구를 착용한 의료진들은 선별진료소와 병원에서 땀을 흘리며 코로나 검사와 치료를 하고 있다. 변이바이러스가 발생하고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의료진의 노고가 당연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20대의 청년들은 자신의 익숙한 생활과는 전혀 다른 군대에 들어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군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차가운 손’이 묵묵히 저마다의 일을 했다. 눈이 많이 온 올겨울, 눈이 쌓이지 않게 누구보다 부지런히 눈을 치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얼지 않은 길을 걷고, 안전하게 운전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차가운 손들 덕분에 우리는 당연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청마루 위의 얼어붙은 먹물을 보면서 곁에 있어 평소에는 몰랐지만 평범한 일상을 지킬 수 있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추위나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제 역할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손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세초(歲初)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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