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원표 씨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탈한 사업가다. IT 솔루션 기업을 경영하던 왕원표<인물사진> 씨는 지난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동종업계 한 업체와 합병시키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런 그가 꼽은 최고의 영화는 홍콩 코믹 액션 영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주성치 주연·감독의 ‘소림축구(2002)’다.
“이 영화를 단순히 우스운 무술 영화로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매우 중요한 메시지들이 들어 있습니다”
왕원표 씨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협업을 꼽는다. 정글 같은 사업, 특히 IT업계는 업무 특성상 사람들 간의 소통이 부족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첨단 기술과 기술이 만나고 그것을 소유하는 업체와 업체가 랑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감독으로 나오는 ‘황금의 오른발 명봉(오맹달 분)’은 젊었을 때 자신의 기량만 믿고 사람들에게 오만했다가 결국 자신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부정시합 제의를 거절한 후 집단 구타를 당하고 오른 발을 다쳤는데 그 후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반면 영화의 주인공 강철다리 씽씽(주성치 분)은 소림권법으로 다진 자신의 엄청난 축구 실력을 깨닫고도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곤란을 겪고 있는 무술 형제들을 찾아 함께 팀을 꾸린다. 결과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세간의 관심을 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는 가난한 사람과 여자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를 미추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분명하지요”
왕원표 씨는 극중 만두가게 아가씨 아메(조미 분)가 가난하고 못생긴 아가씨로 나오지만 마지막에 가서 악마축구단의 마왕슛을 태극권으로 막아내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오는 것이 그 메시지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한다.
“씽씽이 다시 돌아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메이는 스스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각성하고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진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요. 극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것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실상 내면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 봐야 합니다”
극중 메이가 주성치의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손질해 다시 가지고 왔을 때 왕원표 씨는 자기도 모르게 경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회고한다. 아무리 좋은 새 운동화라도 발에 익숙한 헌 운동화보다 편치 않은 법, 씽씽은 바로 그 편하고 정겨운 운동화를 신고 축구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어설프지만 감동스러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왕원표 씨는 악마팀 감독이 결국 처절히 패하는 것이 잘못된 IT업계의 생리와도 같다고 주장한다. 부단한 기술과 실력으로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데 사람을 빼가고 기술을 훔치고 바이러스를 유포하는 식으로 경쟁하려는 기업들은 모두 악마팀 감독처럼 업계에서 비참하게 퇴출돼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왕원표 씨는 소림축구는 루저들의 반란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영화가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거듭 호평이다. 특히 자신을 믿고 꿈을 꾸면 반드시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도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씽씽의 무술 형제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나 축구를 통해 각성하면서 세상 그 어떤 팀보다 강한 팀원으로 자리매김하고 마침내 우승을 거머쥔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따지는 것은 전혀 의미 없어요. 메시지 같은 것은 억지고..., 그냥 재미 있잖아요? 재밌으면 된 거 아닙니까?”
소림 축구 이외에도 왕원표 씨는 ‘쿵푸 허슬’ 같은 주성치 영화를 즐겨보고 다른 장르보다 액션영화를 즐긴다고 소개한다. 무언가 심오하고 거창한 주제도 좋기는 하겠지만 번잡한 사회 생활을 견디기에는 액션영화, 그중에서도 소림축구 같은 다소 황당해 보이지만 웃음과 액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영화가 가장 취향에 맞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고향 경주를 무대로 한 ‘신라의 달밤’과 ‘두사부일체’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는 영화일 뿐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소탈한 왕원표 씨의 가장 솔직한 영화선택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