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에 확산을 거듭하는 코로나로 우리는 축소된 문화현장에서의 갈증이 심했다. 때 이른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요즘, 기다리던 봄에 한층 다가서며 봄날 저녁의 감흥을 돋우는 음악감상회가 있어 화제다. 연일 지쳐있는 우리에게 정신적 여독을 해독해주는 음악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경주세무서 앞 ‘갤러리카페 화(임강혁 대표, 원화로 344)’에서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7시. 아직까지는 30명을 선착순으로 제한 초청해 진행한다. 팝과 재즈, 클래식, 국악 등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장르는 ‘프로그레시브 락’이었다. 지난달 첫 선을 보이며 ‘프로그레시브 락의 음악여행(1)’을 진행한 데 이어 오는 23일에도 두 번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철도원으로 38년째 근속 중인 현직 기관사인 박문수(57)씨와 함께하는 음악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 현직 기관사가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사실이 생소하게 여겨질 것이 분명하나 그는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재야의 고수임에 틀림없었다. 40여 년, 공들여온 음악에 대한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그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고 했다. 몰두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일상에서 무엇보다 음악을 중시하고 즐기며 살아온 그의 이력은 음악 평론가 수준에 다다랐다. 음악에 푹 빠져 사는 여지없는 음악 ‘덕후’다.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를 직접 만드는 경지의 그를 바라보자면 그의 주업이 헛갈릴 정도니..., 그를 갤러리 카페 화에서 만났다. -오는 23일, 갤러리 카페 화에서 즐기는 박문수와 함께하는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음악여행(2)’ 이 프로그램은 박문수 씨와 갤러리카페 화 임강혁 대표와의 의기투합으로 성사돼 지속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어떤 음악이든 훌륭하게 구현해내는 오디오 기기와 환경을 마련해두고 ‘문화 아지트’를 표방하는 임 대표와 박씨는 궁합이 척척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감상회 일색이었던 여타 유사한 프로그램에 비해, 첫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레시브 락을 소개한 것이 눈길을 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감상하고 알리자는 취지에서 임 대표와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제 의견과 맞아떨어지는 제안이었어요. 음악장르를 따지지 않고 시작하자는 거였죠” 장르를 다양화하고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1회 감상회를 이미 열띤 호응속에 치뤘다. 락 계열로 시작해 대중적인 곡들부터 서서히 심화되는 프로그램으로 다가가려는 그들의 복안인 것. 지난달 첫 선을 보인데 이어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그 두 번째 순서 ‘프로그레시브 락(progressive rock)의 음악여행(2)’가 기다린다. 각 곡들의 아티스트와 곡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도 소개할 예정이어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클래식을 오래 들어보니 프로그레시브 락이 클래식과 비슷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의 주요테마를 재해석해 연주하는 변주곡이 있는데 원곡의 메인 테마는 가져가면서 그 곡에 가사를 붙인 곡 해석이었죠. 곡의 의미를 새롭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어요.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즐겨 듣게 된 이유였지요. 예술성 있는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장르다. 귀 호강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데 필요한 회비는 만원. -영화 ‘스타워즈’ 주제곡, 100명의 트램펫터가 연주하는 음악 듣고서부터 음악의 다양성에 빠져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박문수씨에겐 남다른 음악적 토양이 있었다. 소년 박문수에게 음악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직접 제작한 대금을 연주하던 아버지의 감성과 소질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대금 연주를 듣고 자란 소년은 음악적 감성에 누구보다 일찍 눈을 떴다. 국악으로 ‘소리’에 눈을 뜬 그는 사춘기 중학생 시절, 옆집 고등학생 형이 자작(自作)한 앰프로 들려준 영화 ‘스타워즈’ 주제곡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 음악의 다양성에 빠져든다. 100명의 트램펫터가 연주하는 음악에 완전히 매료된 것. 이를 시작으로 음악 감상의 영역은 클래식으로 진화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파가니니 바이올린협주곡 1,2번, 비발디 사계 등을 듣기 시작한다. 서울에 있던 국립철도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음악동아리를 창립해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을 즐기는가 하면, 당시 생활비를 모아 앰프(amplifier, 소리 증폭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세운전자상가에서 간이 오디오 키트를 구입해 앰프를 만들고 꿈에 그리던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 클래식 편향에서 대중적인 팝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철도원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경주기관차 사무소 초임을 발령받고 부기관사와 기관사로 근무했다. 2018년에는 부산고속 기관사 KTX 기장으로 근무했으며 2020년 부산고속기관차 지도 팀장으로 발령받아 KTX 기장들의 교육과 관리를 담당하는 팀장으로, 한 달에 한 두 번은 직접 운행도 한다. 오디오 제작 이외에도 목공일, 서각, 집 짓는 일, 시작(詩作), 사진, 인쇄일 등에도 능한 그는 재능 많은 취미부자기도 하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오디오 제작…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직접 제작해 듣는 음악 매니아 박 기관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오디오기기를 제작하는 등 그만의 소리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지금도 기성 오디오 브랜드 제품을 구입해 음악을 듣던 것에서 예전 들었던 진공관 앰프 소리가 너무 좋아서 ‘진공관 세상’ 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진공관 앰프 및 스피커를 직접 제작해 음악을 듣고 있다. 이전엔 혼자서 도면 만들고 부속을 구했지만 오디오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스피커나 앰프의 외장까지 그의 손에서는 뚝딱이다. “어느 정도의 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으로 정성들여 오랜 시간 만든 뒤, 기대했던 소리를 얻으면 진짜 기분이 좋죠. 하늘을 나는 듯하죠” 그가 직접 만든 스피커만 세 세트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스피커 유닛(unit)을 받아 전기배선과 주파수대가 다른 소리를 분개해주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 배선과 단자를 만드는 등의 과정을 거쳐 스피커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 과정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일이 유닛을 본드로 붙여야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전기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아니까요. 목공일도 그냥 혼자 공부했죠. 뭐” 대수롭지 않은 듯 ‘툭’ 이야기 하는 그는 진정한 멀티어다. 이렇게 만든 기기에 비해 기성제품의 가격은 열배 정도라니 가능하다면 본인이 원하는 음질을 찾아 만든다. 만족도도 훨씬 높고 가성비도 좋다는 것. 무엇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오디오를 가진다는 충만감은 비할 데가 없다고 한다. -경주 최초, 경주고전음악회 결성했으나 장르상의 한계 느껴… 앞으로는 다양한 장르 적절하게 구성해 장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선보일 예정 평소 ‘음악적 편식을 하지 말자’는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팝부터 국악, 클래식, 제3세계음악, 째즈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고 있었던 그는 1998년 경주고전음악회를 결성하고 5인의 결성멤버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한다. 경주고전음악감상회가 결성될 당시는 이런 문화의 불모지였다. 꾸준하게 클래식을 전문적으로 듣던 5명이 멤버로 구성돼 정기적 음악감상회를 꾸린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금가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운영상 한계도 있었다. 클래식의 역사는 400~500년이니 매회 선곡의 한계가 따른 것. 새로운 곡을 발굴해 감상해야 하고 잘 모르고 듣지 않는 곡을 찾아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에 잘 소개되지 않은 곡은 현대 클래식으로 흐르다보니 난해해지고 지속적인 회원 구성이 쉽지 않았다. “새롭게 진입하는 회원이 없는 거죠. 그런 한계를 알고 있기에 갤러리 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적절하게 구성해 장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즐겨야 되는 거죠. 음악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타야 합니다” 음악에서 인간은 완성된다며 음악이 주는 지극한 즐거움을 간파했던 공자가 떠올랐다. 그렇다. 음악은 즐기는 것이다. 몸을 맡기고 감상하는 것이다. -“침체되었던 지역 문화의 흐름을 되살리고 가까이서 음악을 감상하는 힐링의 장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앞으로 그는 우리음악의 모토인 국악, 서양 클래식, 대중가요 등 음악성이 뛰어난 곡을 선정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악의 정보와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한다. “스피커와 오디오 기계 제작과 구입, 선택, 음악에 대한 역사 등의 강의도 인터넷을 통해 진행하고 싶어요. 그런 시도를 하고 저변을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 “침체되었던 지역 문화의 흐름을 되살리고 가까이서 음악을 감상하는 힐링의 장이 되길 바랄뿐입니다. 꾸준하게 지속된다면 이렇듯 작은 문화 모임들이 자연스레 우리 곁에 정착되겠지요” 세상 순한 아저씨 같은 그에게 다가올 정년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묻자 역시 음악 관련 이야기가 주(主)다. “오디오를 만들어보니 제겐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시간과 상황이 되면 오디오를 제작해 주위 분들에게 저렴하게 보급하는 것도 좋을듯해요” 자신만의 오디오를 주문 받아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해비타트운동(habitat, 사회봉사활동의 하나로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집을 지어 무주택 서민에게 제공하는 운동)에도 동참하고 싶어요. 순수하게 후원단체의 재료비만 지원받고 집수리 등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취미로 서각도 해왔으니 집 수리후 문패를 달아드려도 좋겠지요” 평범한 소시민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오며, 자신이 즐기고 아끼는 영역과 재능을 아낌없이 펼치는 그의 선한 영향력이 잔잔하게 파급돼 음악감상문화에서 큰 구심적 역할을 하기를 바라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