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가 신라와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돼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지난해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경주분황사당간지주가 보물로 지정된 데 이어 최근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경북도지정문화재 분황사약사여래입상이 보물 승격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왕 3년(634)년에 창건된 사찰이며, 신라 전불칠처가람 중 하나다. 신라시대 고승 자장과 원효 스님 등이 머물렀던 분황사는 설총이 원효의 유해를 부수어 만든 원효의 소상이 봉안돼 있던 사찰로 알려져있으며, 매년 ‘원효제향대재’와 ‘원효예술제’를 봉행해 원효스님을 추모하고 기리고 있다.
-보물로 승격되는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지난해 12월 3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돼 곧 승격을 앞두고 있다. 아동과 같은 귀여운 인상을 자아내는 불상은 앞서 1996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됐으며, 높이 3.45m에 이르는 대형불상으로 조선 후기 규모가 가장 크고 유일한 금동불입상이다. 경북문화재자료 지정 당시만해도 불상관련 기록없이 조선시대 대형입상인 점을 고려해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과정 중 건물의 부재에서 ‘분황사상량기(1616)’과 ‘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1680)’ 묵서가 확인돼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신희인에 의해 1609년 5360근의 동을 모아 조성 봉안됐음이 밝혀졌다.
또한 당시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분황사 동조약사불상이 고려와 조선을 지나 유전돼 오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됐다. 전란 이후 사회·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약사불상은 전대의 전통에 따라 동조로 제작, 전대의 명성과 위상을 최대한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현존하는 한국 고대 동조불상 중 최대 작품이며, 정통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게 된 것이다.
-볼거리 많은 분황사, 문화재 보호 관리에도 특별히 더 신경써야 이로써 분황사는 보물 지정을 앞두고 있는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롯해 국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 보물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경북도유형문화재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문화재자료 ‘분황사 석정’ 등 국가 및 경북도 지정 문화재가 넘쳐나게 된다. 또 약사불, 초석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 일본식 석등, 일제강점기시절 문화재표지석 등 비지정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여기에 사적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이 인접해 있어 관광객뿐아니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분황사 당간지주를 찾은 관람객 A 씨는 “분황사 당간지주의 특징인 귀부형 간대석과 펜스설치를 위한 지주석 거의 맞닿아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설치해 놓은 펜스로 인해 문화재 관람이 불편하다.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주시 관계자는 “관람객들의 무분별한 행위로 훼손되는 당간지주의 보호를 위해 3년 전 펜스를 설치했다”면서 “펜스 확장을 위해서는 문화재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이에 앞서 경주시에서 자체검토를 먼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