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다니는 직장에서 입춘대길 휘호 행사를 가졌다. 지난 3일 오후 진주의 유명 서예가이자 필자의 스승이신 송계(松溪) 윤관식 선생님을 모시고 휘호시범과 함께 희망 직원들에게 5개 한문 서체와 한글로 씌여진 입춘방을 준비해서 나눠준 것이다. 연구소 1층 로비에 마련된 행사장에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직원들의 예상 밖의 호응에 행사를 준비해 온 그간의 피로를 잊게 할 정도로 큰 보상으로 다가왔었다.
늘 바쁜 일상에 쫓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는 연수원 연구원들에게 입춘대길, 봄이 시작되어 길하고, 건양다경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 바랍니다.’라는 입춘방을 전달하고 나니 필자의 마음속에도 봄의 새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한편 오래전 광명 고향집에서 서예를 즐기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평소 노동으로 분주하시던 아버지의 일상과 달리 벼루에 손수 먹을 갈아 붓을 잡고 입춘대길을 쓰시는 모습과 대문과 방문 앞에 붙여놓은 아버지의 글씨는 선비의 품격과 미풍양속을 간직할 수 있게 했다. 평생 취미로 서예를 하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입춘은 24절기 중 새로운 시작인 봄의 문턱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옛적부터 대궐에서는 설날의 문신들이 지어 올린 신년 축시를 신년 축시들 중에서 잘 된 것을 선정하여 대거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을 써 붙였고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입춘첩을 붙이고 새해 봄이 옴을 송축했다 전해진다.
사실 이런 모습이 그리 오래전이 아닌데 우리 사회가 어느 때부터인가 지나치게 한문을 멀리하고 특히 서예가 생활에서 너무 멀어진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개선을 제기해 본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기에는 중학교부터 한문을 필수과목으로 배웠고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고문(古文) 과목까지 있어서 어지간히 공부한 학생이라면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있던 신문쯤은 읽을 수 있었다.
우리말은 오랜 기간 한문의 영향을 받아 한자어가 상당히 많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도 한자어가 상당 부분 쓰여 있다. 간혹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 세대 교수님들이 요즘 학생들이 지나치게 한자어를 몰라 강의하는데 힘들 때도 있다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한글의 과학적 구조나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야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이 공감하며 더 가꾸고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왕이면 한문의 현실성을 고려하여 기본적인 한문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서예는 더 그렇다. 서예는 어느 사이엔가 조금은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서예를 하는 것이 좀 고리타분한 것인 양 지레짐작되기도 한다. 서예를 꾸준히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서예를 통해 마음을 반듯하게 고르고 정신을 올곧게 가지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이런 서예의 장점을 널리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마침 본지에 서예를 세계화시키겠다는 젊은 서예인의 당찬 기개와 그의 놀라운 작품, 그가 다양하게 각광 받는 모습이 실린 바 있어 반갑기 이를 데 없었다. 그를 보면 서예가 새로운 예술의 장르로서의 발전이 멀지 않아 보인다. 이참에 한문과 서예가 좀 더 친숙한 공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한편 농경사회이자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와 달리 필자가 머물던 아일랜드의 봄은 어린 양들의 울음소리에서 봄을 느낄 수 있다. 10년 전 필자가 살던 아일랜드 실리고 집 뒤뜰에는 2월 초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어린 양들이 태어나 목초지를 뛰어다니고 어미를 찾아 우는 바람에 봄이 왔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직도 산 위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찬 바람이 불어와도 봄의 전령사인 어린 양들은 지치고 힘들었던 이국땅에서 새봄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아버님이 입춘방을 직접 써서 보시던 모습도 좋았고 어린 양들이 초원을 뛰어놀던 모습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열심히 사진 찍던 추억들이 이제는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난날의 봄에 대해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봄의 기운을 느끼며 아오라(Ahora-지금), 봄을 즐길 수 있는 필자와 독자 여러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