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붙은 파란색 그래프가 점점 올라가다가 급기야 천장에 닿는다. 파란색 줄은 천장을 ㄱ자로 꺾더니 계속 증가한다. 벽면을 타고 천장에까지 올라간 그래프는 일본 현지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그려 넣은 코로나 확진자 수다.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의 그 뾰족한 빨간 왕관의 지배하에 놓여있다. 메타버스(meta-verse:가상의 공간에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요즘 세상에 아직도 팩스와 도장 등 아날로그 문화를 고집하는 일본, 그 심장인 도쿄 한복판에서 천장으로 뻗어나가는 파란색 그래프를 보니 기분이 참 묘하다. 좀비 영화를 보는 듯 기괴하다고나 할까.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는데, 그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를 꼽아보라면 단연코 ‘욕망’과 ‘두려움’이다. 오랫동안 욕망하던 새 차를 드디어 장만했다손 치자. 기대하지 않은 두려움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온다. ‘차에 스크래치라도 나면 어쩌지?’, ‘차가 자꾸 이쪽으로 넘어오네, 혹 음주운전자가 아닐까?’ 운전대를 잡은 손이 안절부절못한다. 똥차(!)를 몰던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온갖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래서일까? 누구는 그러더라, 초보운전자일수록 좋은 차를 몰아야 한다고. 천천히 굴러가든 삐뚤빼뚤 굴러가든 주변 차들이 알아서 피해 간다고 말이다. 욕망은 두려움을 부르고 그 두려움을 없애고자 더 큰 욕망을 품는, 여기는 사바세계이다.
와이프만 봐도 그렇다.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우리 집 남자들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이 상품은 곧 마감됩니다!’ 하는 TV 화장품 광고에 또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 이튿날 케이스부터가 화려한 화장품 세트를 풀 때까지 행복해 보였는데, 웬걸 며칠도 안돼 와이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화장품 광고에 나오는 그 연예인 얼굴처럼 절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한 모양이다. 분노와 뜨거운 절망을 맛봤으니 이제 더 큰 욕망을 희구할 차례인가, 화장품 관련 채널을 마구 돌리고 있는 와이프 눈이 범상치 않다. 화장품이나 명품가방 같은 고가 브랜드 시장은 이 세상에서 절대 망하지 않는다에 내 만원을 건다.
보통 사람은 호기심에 남의 사생활을 보고 싶은 욕망만큼이나 나 자신은 노출시키기를 꺼려왔다. 욕망이 방향을 바꾸었는지 요즘은 아닌가 보다. 지금 한창 추운 캐나다 오타와, 멀쩡한 도로를 두고 얼어붙은 강 위를 질주하던 자동차가 얼음이 깨지면서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났다.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911에 신고 접수를 하고 카약과 밧줄을 챙겨 구조에 나서는 등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운전자 본인은 아주 여유롭게도 셀카(selka(self-camera)는 콩글리쉬이고 selfie가 맞는 표현)를 찍고 있더란다. 핸드폰을 쥔 손의 각도로 볼 때 얼음 속에 처박힌 자동차 꽁무니와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다 담겼으리라.
도대체 그녀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자신을 구하러 뛰어온 사람들보다 더 급하게 그 상황을 찍고자 했던 이유는 단 하나, SNS에 올리기 위해서다. 심각한 사건 사고일지라도, 아니 그러니까 더욱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을 테다. 이게 말이 되냐고? 의도하기조차 쉽지 않은 그 사진 한 장이면 엄청난 조회수와 ‘좋아요!’와 전 세계로부터 밀려드는 댓글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돈이 되는 사진이란 말이다.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경제적 성패의 주요 변수가 된 요즘이다.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 또는 관심경제라고 정의하는 이런 풍조는 죽을 뻔한 경험조차 돈으로 바뀌는 세상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자극적인, 말도 안 되는 사바세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데 있다. 그 주역 중 하나가 회사 모토마저 ‘절대 나쁜 짓 하지 말자(Don’t be evil)’는 구글(Google)이다. 그 회사는 9년 전부터,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수집해 왔다. 개인별 맞춤형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말이다.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자기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전 세계 고객들의 정보를 팔아왔다. 페이스북으로 알려진 메타사(社)는 청소년들에게 혐오와 폭력을 인위적으로 조장한다. 십대 고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자메시지를 서비스하는 애플사(社)는 말풍선 색깔로 왕따 문화를 조장하여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이용해서 말이다.
곧 있으면 정월대보름이다. 까만 하늘에 원만(圓滿)하고 넉넉한 보름달은 우리 보고 ‘이제 그만 멈추라’는 자연의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