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그 절절함 때문에라도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가장 유명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세익스피어 작 ‘로미오와 줄리엣(1968)’일 것이다. 가문의 대립으로 인해 연인이 얼떨결에 죽음을 택해야 했던 비극적인 사랑은 어린 줄리엣의 가슴에 꽂힌 비수만큼 시리다. 경주의 커피 명가 ‘얀’의 손인석 사장은 이 영화를 중학교 졸업식 즈음에 보고 홀딱 반했다고 고백한다. “경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다 엄마의 가열 찬 노력으로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다녔어요. 1979년 2월 경주에서 겨울방학을 보내다 중학교 졸업식을 위해 대구에 갔다가 혼자 대구 시내를 배회하던 중 한일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영 포스터를 보고 극장으로 갔습니다” 요즘과 달리 극장 앞에는 긴 줄이 서 있어서 그 줄에 같이 서서 표를 사면서 무척 가슴이 설레었다는 손인석 사장은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듯 회상하고 있다. “첫 장면은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되었고 잠시 후 줄리엣이 등장 했지요. 그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지 속으로 ‘와~ 이쁘다’는 감탄사가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좋았어요.” 중학교 졸업반 손인석 소년의 기억은 줄리엣으로 나오는 올리비아 핫세의 한 장면 한 장면에 숨이 멎는다. 호화로운 파티장에 등장하는 붉은색의 옷과 길게 묵은 검은 머리의 줄리엣... 특히 이 장면에서 울려퍼지는 명곡 ‘What is a youth’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OST가 소년 손인석을 넉다운 시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장면! “발코니 장면 있잖아요. 영화를 본 남자라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지요. 그 시대에는 약한 19금쯤 되었을 겁니다. 올리비아 핫세의 그 뽀얀 가슴을 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러면서 손인석 사장은 올리비아 핫세를 일반화 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감수성 예민할 때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재미있고 안타까웠어요. 올리비아 핫세의 미모에 그 당시 남학생들은 전부 ‘뿅’ 갔을 겁니다” 그 영화의 감동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손인석 소년은 영화를 본 후 바로 레코드 가게로 가서 OST를 구입해 카세트 테잎에 꽂고 쉴 새 없이 들었단다. 그러나 추억은 추억 자체로 아름다울 뿐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것은 추억을 반감시킬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추억은 거기서 딱 마무리되됐어야 하는데 세월이 흘러 30대가 된 손인석 사장은 추억을 다시 소환한 결과 엉뚱하게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만다. “부산 어디 난전에 불법DVD로 그 영화가 나와 있는 겁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덥석 사서 보았는데 너무 유치해서 못 보겠더라고요. 뭐 이게 말이 되나 싶더군요” 심지어 손인석 사장은 요즘 네플릭스에 올라온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는 추억보다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먹어버린 올리비아 핫세를 연상하며 넌더리 친다. 그렇지만 네플릭스에 나온 올리비아 핫세는 역시 예뻤고 OST만큼은 지금 들어도 최고였다고. 그러면서 뒤에 알아보니 영화는 이탈리아 베로나가 배경이고 촬영은 비첸차에서 진행된 것이었다며 이탈리아 가면 꼭 들러 보겠다고 다짐한다. 분명히 OST ‘What is a youth’를 다운 받아 갈 듯! 기왕에 손인석 사장의 환상이 깨어졌으니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환상을 좀 더 깨보고 싶다. 이 긴 러브 스토리는 어쩌면 손인석 사장이 깬 환상보다 더 뜨악할지 모른다. 설정상 원작의 시간적 흐름은 불과 5일이다. 5일 동안에 그 난리법석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줄리엣의 나이는 13살, 로미오는 10대 후반으로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고3이나 대학생 오빠가 초등학교 5학년, 조숙하지만 어린 여학생을 꼬셔서 그 난리를 친 것이다. 또 하나, 올리비아 핫세는 올해 72세 할머니다. 그러나마나 Glen Weston이 부른 Ost는 정말 압권이었다. 그 첫소절이 처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가슴 설레는 것처럼 가늘게 떨리게 녹음한 것이 신의 한 수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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