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정 씨는 자칭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평범한 공직자다. 스스로 너무나 평범해 신문에 이름을 올릴 만한 일이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김재정 씨가 추천하는 영화 ‘1917’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온갖 자극적인 영화와 기발한 SF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이 영화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을 법한 전쟁을 다룬다. 그런데 이 전쟁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소위 ‘영웅’을 다루는 거창한 전쟁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 고조되던 1917년 영국과 독일 간의 어느 전쟁터를 다루었다. 독일군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전장, 독일의 오랜 공작으로 영국군 1600명이 함정에 빠져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영국군 지휘관은 예정된 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해 두 명의 병사를 해당 연대에 파견한다. 해당 연대에 형이 장교로 복무중인 블레이크와 블레이크가 아무 뜻없이 함께 가자고 선택한 스코필드다.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리는 두 병사의 뒤를 무비 카메라가 롱 테이크로 따라간다. 단순히 ‘음식이나 나르라’는 괜찮은 명령쯤을 기대하고 친구 병사를 대동한 것이었는데 독일군 전장을 누벼야 할 신세에 처한 두 병사의 눈에 들어온 전장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영화에는 참호가 자주 등장한다. 김재정 씨는 영국군과 독일군, 피아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참호에서 불현듯 젊은 시절 기억을 불현듯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최전방 휴전선에서 근무한 김재정 씨는 그때 참호 속에서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졌다고 회고한다. 그게 30년이 더 지나 아들 세대들에게까지 전달된 것이 못내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그런 만큼 전쟁을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이 영화를 권하고 싶어진다. 이 시대의 전쟁, 특히 남북 간의 전쟁은 이전 시대 전쟁과 달리 일거에 대량의 인명이 살상당할 수 있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에서 현대전은 전후방을 막론하고 초토화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전쟁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하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건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재정 씨가 추천한 1917은 바로 이런 전쟁의 참혹함을 흔들리는 무비카메라를 통해 보여준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파견한 젊은이들 중 주임무를 띤 블레이크가 허무하게도 독일군의 칼에 찔려 죽으면서 남긴 말은 형에게 ‘내가 편하게 죽었다’고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해달라는 유언이 고작 ‘편하게 죽었다’는 것이야말로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시퍼런 젊은이들의 청춘과 꿈을 일거에 앗아가는 전쟁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남북한이 대치 중인 한반도는 155마일 휴전선과 연평해전에서 보듯 바다 위에서 언제라도 그 뇌관이 터질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지켜야 할 후방의 가족이자 국민들이라면 그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군복무를 마칠 수 있도록 전쟁을 억제해 주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김재정 씨의 간절한 바람이다.
“우리는 실제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다. 그러나 휴전 상태에서 남북한간 오랜 대치 기간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전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처참한 것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1917에 나온 스코필드와 블레이크가 우리의 아들들이 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1917년은 1차 세계대전을 다루었지만 불행히도 그 허망한 1917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22년을 사는 우리의 선택은 최대한 그 1917년을 이 땅에 재현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김재정 씨 : 경주 출신으로 경주고 졸업 후 공직생활에 투신, 주경야독으로 석사까지 마친 학구파다. 서울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다 최근 울산으로 발령 나 고향 근처에서 보람된 생활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