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하나가 서 있다. 두께 1밀리미터에 높이가 5밀리미터로 손톱 크기도 안 된다. 그 뒤에는 첫 번째 것보다 1.5배가 큰 도미노가 서 있고, 이런 방식으로 모두 14개의 도미노가 세워져 있다.
토론토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스테판 모리스(Stephen Morris)가 볼펜으로 첫 번째 도미노를 밀자 도미노는 차례대로 쓰러진다. 마침내 1미터 조금 넘고 무게도 45킬로그램 정도의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진다. 소리도 둔탁하지만 넘어지는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 게 마치 돌로 된 두꺼운 벽이 맥없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도미노가 계속되다 보면 “29번째는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차례가 될 거”라고 스테판 교수는 담담하게 말한다. 와, 기적이다. 손톱 크기의 도미노 하나가 381미터 높이의 빌딩을 자빠뜨렸으니!
도미노의 매력은 이렇게 탄력과 가속에 있다. 일정한 방향과 거리를 두고 서있던 도미노가 하나씩 넘어가다 보면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빌딩도 가뿐히 넘어간다. 빌딩도 잡아먹을 그 위세를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진행 방향이나 범위(거리)를 벗어나는 거다. 일단 영향권 너머에 서있거나 진행 방향에서 한발 비껴서 있으면 아무리 기세 등등한 도미노라도 멈춰 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빌딩이 무너지더라도(?) 결코 멈추지 말았으면 하는 도미노가 있다. 어느 새벽 아무도 모르게 경찰서 앞에 손 편지와 과자가 가득 든 박스를 몰래 놓고 가는 승용차가 CCTV에 잡혔다. 불철주야 시민의 안정을 위해 일하는 민중의 지팡이들을 위한 서프라이즈 파티였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좋은 의도의 행동은 반드시 살아 움직이는 법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뭘까 하다가 아들이랑 폐지를 모으시는 할머니 리어카를 밀어드렸다. 어르신 보니까 어머니 생각난다며 손에 작은 정성이라며 꼭 쥐어드렸다. 부여잡은 내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어르신의 손은 차고 거칠었다. 하지만 얼굴의 주름은 분명 행복해 보였다.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라는 말이 있다. 보잘것없고 금방 녹는 눈덩이라도 계속 굴리다 보면 통제하지 못할 수준까지 커져버리는 현상에 쓰는 말이다. IMF 외환위기 때를 기억하시리라. 우리 모두가 힘들었던 그 시절, 기업보다 개인 단위의 기부가 더 많았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그랬던 우리가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사랑의 열매(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연간 모금액이 2021년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건강한 의미의‘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마구 넘어지는(?) 소리가 반갑다.
말 나온 김에 경로당에서 시작된 도미노도 소개한다. 어떤 청년이 경로당에 몰래 들어갔다. 돈을 훔치러 간 게 아니다. 청년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밥을 훔쳐 먹고는 설거지에, 경로당 청소까지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 그 청년은 어릴 적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친형마저 죽어 이 넓은 세상에 혼자뿐이라고 진술했다. 서른이 넘었지만 한글을 읽지 못한다고도 했다.
도미노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찰들도 딱했던지 그 자리에서 청년을 복지 공단에 연결시켜 주었다. 재활할 수 있게 말이다. 경찰 한 분은 삼만 원을 건넸다. 안 받겠다는 걸 그럼 빌려주는 거라고 했다. 눈물을 흘리며 그 돈을 받아든 청년이 몇 주 후 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돈을 갚으러 온 것이다. 경찰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경로당 어르신들도 이런 사람 벌줘서는 안 된다고 처벌 불원서를 써주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경로당으로 오라”고 했고 “엄마다, 할머니다 생각하고 힘들면 꼭 들러”라고 당부했다. 선행을 하면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때 느끼는 행복감은 혈압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인다고 한다. 청년도 경찰관들도 경로당 어르신들도 모두 호르몬 범벅이었으리라.
코로나로 택배 물량은 늘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고생하시는 기사님을 위해 빌라 4층에 음료, 빵, 과자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다. ‘늘 수고해주셔서 감사해요, 필요한 만큼 드세요’라고 쓴 종이와 함께. 주전부리 몇 개를 쥐어든 택배 기사님은 닫힌 문에다 대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한다. 어느새 ‘따뜻한’ 눈덩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