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大佛 Ⅰ 월탄 박종화천년을 지키신 침묵만겁도 무양無恙쿠나태연히 앉으신 자세배움직함 많사이다.동해바다 물결이 드높아허옇게 부서져 사나우니미소하시여 누르시다.천년 긴 세월을두 어깨로 막으시다.신라의 큰 공덕이님 때문 이시느라.아침 해 붉게 바다에 소용돌이쳐 솟으니서기瑞氣 굴속에 서리우고달빛 휘영청 떠오르니향연香煙 님 앞에 조요하다일대一代 명공名工의 크나큰 솜씨에고개 숙여 눈물겨워 지옵네.
석굴암 본존불은 문화유산 가운데 유일한 인공 석굴 여래좌상이다. 호국사찰의 서원(誓願)을 장엄 찬란한 종교예술로 꽃피웠다. 1.58m 원형 팔각 대좌 위에 3.26m 화강암 단단한 돌로 모남 없이 다듬었다. 대자대비(大慈大悲) 한결 같은 불심에 천년숨결을 느끼는 중생이다. 사계절 오르내리는 석굴암 천상의 길은 마음이 먼저 찾아가는 길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느리게 밟히는 흙길에 번뇌가 녹아내린다. 산을 끼고 낮게 따르는 오솔길은 짐 진 무게를 놓아버리는 여유로 평화롭다. 산비탈 격 없이 비켜서는 산길의 흐름에 젖어드는 심신은 안온하다. 정겹고 수더분한 흙길에 빗물 촉촉한 날은 시상(詩想)이 겹친다. 흙살도화지 수두룩하게 빗물에 도배된 낙엽은 또 하나의 살가운 풍경길이다. 쉼 없는 생의 불협화음 가지런히 매기려 오르는 천상의 안식처 석굴암, 인간사 희노애락 구비치는 파랑을 고요히 풀어주는 대불(大佛)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자비심에 무심히 안기고, 무던히 품어진다. 넋을 놓고 친견하는 무량함에 멍 때리는 순간의 묘미가 경이롭다. 천상으로 올라 하산하는 길머리 석굴암 삼층석탑을 기웃거린다. 요사채 옆 동북쪽 샛길 오르막 돌층계를 따라가면 숨바꼭질 하듯 탑을 만난다. 아담하면서도 올 곧은 삼층석탑이 탑인 듯 부도인 듯 단아한 자태다. 팔각원형의 이중 기단석에 삼층 탑신부 몸돌 층층이 옥개석 지붕돌 가지런하다. 석탑 조형은 신라시대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색다른 탑의 양식이 유래된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화강석 삼층석탑 높이는 3.03m, 8세기 말로 추정하며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석굴암 삼층석탑 언덕마당을 살피면 두 마리 돌거북이 앙증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기특하고 반가워 거북등을 쓰다듬으면 겨울 찬 기운에 손끝이 시리지만, 옛 석공의 온기가 전해져 가슴이 따습다. 탑돌이 합장으로 목례를 치르고 돌층계를 내딛는 발길이 하릴없이 가볍다. 신라오악(新羅五岳) 중 동악(東岳)으로 숭상 받던 토함산.【삼국유사】 기이편 신라 제4대 석탈해왕 토함산 동악 수호신이 된 설화, 요내정 우물 기록이 전한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토함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백의를 시켜 각배(角杯)에 물을 떠오게 했다. 목이 마른 백의가 먼저 물을 마셨는데 각배가 입에 붙어버렸다. 탈해가 꾸짖자 백의가 뉘우치고 용서를 구했다. 비로소 각배가 떨어졌다. 이 후로 탈해를 두려워하며 감히 속이지 않았다. 토함산 동악 속 요내정 우물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요내정의 위치를 석굴암 감로수 등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토함산 정상 인적이 드문 골짜기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는데 알천 발원지다 포수우물을 탈해왕 관련 요내정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왜구의 침입을 막는 최단통로 관문인 토함산은 신라국토 방위의 지리적 요충지이다. 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서도 호국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겠노라는, 문무왕의 혼령이 묻힌 수중 능 대왕암이 토함산 아래 동해변에 장엄하다. 신라인의 기상과 염원을 호국불교로 승화시키려는 불심이 토함산석불사본존불을 탄생시켰으리. 동지 지난 엄동설한 서녘으로 빠지려는 짧은 해를 잡고 푸른 솔잎들이 부산하다. 겨울채비를 다져놓은 나무의 몸짓들이 삭풍에 맡긴 숨을 풀고 있다. 저물녘에 깊어지는 사유의 폭을 무심(無心)에 담고 하산하는 겨울 나그네가 된다. 땅은 얼어 지상의 가장 낮은 보폭으로 걸음을 떼고 가는 움츠린 그림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