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는 성장해 왔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유례없는 대사건으로 전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세계 3차대전을 겪고 있다. WHO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백신만이 유일한 답이 아니고 물리적인 거리 두기와 마스크 등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어떤 교훈을 배우고 있을까?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농민, 상공인, 교육자,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통해 성장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도시는 과밀화로 인해 여러 가지 유형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장티푸스와 콜레라, 홍역 등 수많은 질병이 밀집된 인간과 인간 사이를 파고들면서 전파되거나 소멸했다. 사람이 많은 도시일수록 이들 바이러스들은 더 빨리 더 넓게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역시 60% 이상이 인구가 과밀한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다. 끔찍한 것은 이런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존엄한 죽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망자는 의료폐기물처럼 취급되고 있다. 감염방지를 위해 즉시 격리되고 가족들과는 작별의 시간을 나눌 수 없이 화장터로 직행한다. 바이러스의 재앙이자 과밀화된 도시의 재앙이라 할 수 있다. 비단 바이러스 뿐일까? 집값과 거주비용의 상승, 교통체증, 환경오염, 각종 범죄 등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피할 수 없는 재앙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숙명처럼 도시 속에 살아야 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스럽고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서구 물질문명이 그 누구에게도 안전한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해 인류 최고의 도시인 뉴욕을 떠나 버몬트 숲속에서 살았다. 그들은 뉴욕이라는 초거대도시와는 떨어져서 자연 속에서 스무 해의 삶을 살면서 서로 돕고 기대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삶을 통해 만족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그들이 남긴 ‘조화로운 삶(good life)’에 기록한 요체는 노년에 노동 4시간, 지적 활동 4시간, 친교 활동 4시간이었다. 그들은 평생 이 원칙을 실천한 끝에 건강하게 생을 마감했다. 따지고 보면 문명의 발달은 그 두 사람보다 훨씬 쉽게 더 조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 문명이란 바로 첨단화된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이다. 그리고 우리 경주는 조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최적의 도시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서울 같은 현란하고 복잡한 도시가 아닌 평온하고 안정된 도시다. 그러면서도 온갖 생활편의가 만족할 수준으로 갖추어져 있다. 4시간의 개념을 놓고 보았을 때 노동을 위해서나 지적 활동, 친교활동을 위해서도 안성맞춤인 도시다. 덤으로 서울과의 시간적 거리도 짧아졌다. KTX를 타면 2시간 10분 정도 서울 시내 진입이 가능하고 SRT를 타면 강남 수서역까지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수도권은 1시간 30분, 이웃 대도시인 동대구는 16분, 부산은 28분대로 아주 가까워졌다. 이런 점에서 경주를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관광객들이 경주로 몰려오고 있다. 비단 관광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주는 도시 과밀화에 따른 각종 재앙들에서 일시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좋은 피난처이자 조화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는 많은 여건을 갖추었다.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과 그 산과 인접한 바다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먹거리, 오랜 역사 속에서 발현된 다채로운 문화자산 등은 다른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여건이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유적을 지키기 위해 도시 과밀화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 팬데믹 시대에는 오히려 행운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경주가 한층 더 좋은 도시로 다가온다. 코로나 팬데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방으로 흩어져야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있는 적절히 도시화된 경주야말로 최고로 조화로운 삶이 보장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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