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을 거두자 곧바로 다 폰테와 함께 ‘돈 지오반니’(1787 초연)를 무대에 올린다. 돈 지오반니는 온 유럽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의 하인 레포렐로는 유명한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가씨, 이것이 제 주인님이 사랑한 여자들의 명단입니다. 바로 제가 만들었답니다. 함께 읽어 보실까요?이탈리아 640명, 독일 231명, 프랑스 100명, 터키 91명이고요. 스페인은 천하고도 세 명이나 됩니다. 1003명! 이 오페라의 표면적인 주제는 ‘바람피운 자, 지옥으로 간다’이지만, 그리 간단한 오페라는 아니다. 오페라 부파라고는 하지만, 비극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도 뛰어나다. 모차르트의 음악이지만 베토벤 같은 웅장함도 맛볼 수 있다. 특히 서곡이 멋지다. 많은 이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 ‘돈 지오반니’를 최고로 뽑고 있다.
예술가를 다룬 작품 중 가히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아마데우스(1984)는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서사구조를 부분적으로 차용해 버린다. 우선 영화의 도입부에서 오페라 서곡이 웅장하게 울린다. 모차르트를 연신 외치는 살리에리의 절규와 함께 말이다. 한편, 영화 속 오페라 돈 지오반니에 등장하는 석상은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다. 오페라 제작에 매진하느라 부친상에 다녀가지 못한 불효자(?) 모차르트를 부친이 지옥으로 데려가는 설정인 것이다. (※ 레오폴트는 돈 지오반니가 초연되기 5개월 전에 잘츠부르크에서 사망했지만, 모차르트는 돈 지오반니 제작을 핑계로 부친상에 가지 않았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작가는 부친상에 가지 않은 모차르트의 자책감에 착안하여 돈 지오반니의 석상을 레오폴트에 치환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마지막 장면은 석상이 살아나 천하의 호색한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 장면은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로 연출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연출이 이루어진다. 만약, 오케스트라 연주 프로그램이 ① 돈 지오반니 서곡, ②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③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건 다분히 영화 아마데우스를 위한 것이다. 피아노협주곡 20번 1악장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하러 가는 장면에서, 2악장은 영화 마지막에 살리에리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오는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한편, 교향곡 25번(1악장)은 영화 도입부에서 살리에리가 자해하는 장면을 긴박하게 묘사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