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작품을 통해 타인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는 보람찬 일이 하나있다. ‘긴 삶의 전쟁에서 물러나 세상의 한켠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미술적 경험들과 기술들로 그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 화실을 들르시는 어른들께 나는 굳이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좋은 길을 안내 해드린다는 표현을 늘 쓴다. 10년째 나에게 소소한 것들을 안내받으시는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어른이신 어느 분이 70여년의 삶을 지내오시며 근간에 화두로 버리고 정리하는 일들을 조금씩 실천하고 계신다. 그 분의 초대로 사면이 책으로 가득한 방에 초대되어 마음에 드는 책을 얼마든지 가져가도 된다는 말씀에 눈에 힘을 잔뜩 넣던 중 빨간색 표지의 위화〔余華〕 작가의 장편소설 ‘인생’을 발견했다. 이 책은 불과 며칠 전 역시 그 분께 추천받아 감상할 날을 재고 있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인생’이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다. 그즈음 역시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을 워낙 재밌게 읽었던 터라 여러모로 잔뜩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푸구이’라는 사람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중국 근 현대사를 배경으로 담담하게 펼쳐내고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집안의 주인공은 미모의 부인과 예쁜 딸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매일 술과 도박으로 흥청망청,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만다. 노한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해 돌아가시고 부인은 딸을 남겨둔 체 뱃속의 아이를 부둥켜안고 집을 나가버린다. 주인공은 결국 노모와 함께 변두리 소작농민으로 전락해 살아가게 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내는 혼자 낳은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푸구이의 삶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나는 20여년 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작품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20대에는 방황하며 타인들의 겉모습을 표현해 왔으며, 30대는 상처받은 인간관계와 내면의 세계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작들을 그렸다. 불혹이라는 40대를 맞으며 나의 정체성을 통해 타인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내 머릿속은 온통 삶에 대해 때론 타자로서 또 때로는 온전한 나로서 늘 고민하고 있다. 고등학교 강의에서 만나는 10대 청춘들을 보며 과거도 뒤돌아보고 작가로서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화실과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많은 어른들의 삶을 엿보며 나의 미래도 설계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이란 타이틀을 안고 태어난 나의 삶은 늘 안개속이다. 푸구이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운명을 거역하지도 그렇다고 쉬이 무릎 꿇지도 않는다. 인생이란 것이 운명의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가혹함에 대해 거부하며 스스로 새롭게 개척해 나가면서 용서와 화해라는 삶을 엮어 가듯 40대 중반을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인생’이라는 책은 많은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어쩌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나에게 덤덤함으로 무장하고 스스로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에서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원작과 다소 다른 몇몇의 각색과 다른 결말에 다다른다. 그러나 결국 책의 중국어 원제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 전염병이 만개한 이 어려운 시대, 쉬어가듯 한 번쯤 우리들의 삶을 깊이 있게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한규 작가 : 달과 연꽃, 경주를 소재로 행복을 그리는 화가. 2002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매년 한 번씩 개인전을 열어왔을 만큼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최한규 작가는 경주미협에서의 봉사활동에도 열심인 한편 황리단길 문화산실 ‘갤러리란’에서 미술관장 역할도 맡고 있다. 화랑로에 아트인 미술학원을 열어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는 미술학도들을 가르치는데도 혼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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