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 중 하나인 위내시경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일상의 복귀가 빠른 비수면 내시경을 선택했다.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위내시경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겪어보지 못한, 처음 접하는 낯선 것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앞선 환자들의 ‘꺼어억 꺼어억’ 헛구역질 소리를 연신 들어야했다. 공간이 주는 위압감도 있었다. 위내시경을 하는 공간은 병원이라기보다는 어둡고 칙칙한 주방 같았다. ‘호스를 목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느낌은 어떨까?’ 주위에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였을까. 직접 이 공간에 오니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병상에 어깨를 대고 비스듬히 누웠다. 가뜩이나 긴장했는데 쌀쌀한 날씨까지 더해져 몸이 움츠려졌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한 손은 소매 안으로, 다른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였다. 뒤에 계신 간호사가 “좀 추우세요?” 라며 말하며 몸을 두툼한 이불로 덮어줬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담당 의사가 도착해서 입으로 호스를 넣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조금 전에 이불을 덮어주었던 간호사가 뒤에서 내 팔을 자신의 두 손으로 포근하게 감싸준 것이다. 그리고 아기 달래듯 토닥토닥 내 팔을 두드리면서, ‘흠흠흠’ 허밍소리를 내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간호사의 따듯한 온기가 내 몸 속으로 전해오는 것 같았고 위내시경의 불안은 갑자기 눈 녹듯 사라졌다. 호스가 목에서 위까지 내려가는 순간순간마다 간호사는 내 몸을 꼭 안아주었고 그 후의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의사에게 처음인데도 너무 잘 한다는 말을 들으며 위내시경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칼럼의 제목이기도 한, 이소영의 『별것 아닌 선의』 (어크로스, 2021) 책이 떠올랐다. 작가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온기를 품은 일상의 순간순간들 말이다. 우리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만 같다. 좌우로 극명하게 나눠져 지리멸렬에 빠진 정치, 애매하고 막연해 보이는 4차 산업혁명,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부동산과 코인 등등. 온갖 매체들은 이런 단어들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마주친 작은 선의는 더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경주는 특별한 도시이다. 하나의 도시가 국가의 수도로 무려 1000년간 지속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물다. 그런 까닭에 경주는 지붕 없는 노천박물관으로 불린다. 도시 전체가 유형의 문화재들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매년 국내외 수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관광객들에게 경주는 낯선 곳이다. 낯선 세계에 당도했을 때의 생경함, 그 어색한 지점에서 경주 사람들의 ‘별것 아닌 선의’를 생각해본다. 위내시경을 받으면서 간호사가 내게 했던 따뜻한 포옹처럼 말이다. 별것 아닌 선의는 사실 별것이다. 특별하다. 작은 선의는 가슴에 각인되어 큰 울림이 된다. 유형의 문화유산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경주, 경주 사람들의 무형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진다면 경주의 아름다움은 더 오래, 더 진하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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