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 4                                                      곽효환 검푸르고 시린 어둠을 헤치고 하얼빈 가는 길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밤 열차는 서쪽으로 혹은 서서북쪽으로 북만을 가로지른다10월인데 어느새 서리가 몇 번 내리고하얀 눈 소복이 쌓인 우스리스크를 지나 수척해진 수이푼강을 건널 무렵 예 어디 있었을 육성촌을 어림하며이 강을 건너오고 건너간 어질지만 시름 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더듬는다 모두가 잠든 시간 불 꺼진 객실에 홀로 잠들지 못하고 꼿꼿이 정좌한 사내와 그에 기대에 뒤척이는 또 다른 사내를 본다가장 사랑하고 의지했을 어딘가 닮은 듯한 그러나 시베리아로 혹은 남쪽 항구로 갈라지는 분기점에서엇갈리고 갈라지는 운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그 밤도 열차는 오늘처럼 무심히 동청철도를 달렸으리라.창밖으로 이른 눈발 탐스럽게 날리고 가지마다 상고대로 하얀 눈꽃을 피운 숲의 나무들이, 그 정령들이 흘러간다 오늘처럼 잠 못 이루고 서성이며 길고 혹독한 겨울과 질척질척한 짧은 여름을 수 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뭇 사람들의 엇갈리고 뒤틀리고 사나운 그 밤도 섬섬히 반짝이는 별들만이 희망이었으리라우랄산맥을 지나 예니세이강을 건너 마침내 얼지 않는 항구까지먼 서쪽에서부터 원동을 유령처럼 오고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궤도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꼬리를 물고 있다 -‘엇갈리고 뒤틀리고 사나운’ 동포의 이주 역사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의 강제 이주 후의 뿔뿔이 흩어지는 민족의 서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잘 교직된 시다. 화자는 지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하얼빈으로 가는 도중 우수리스크와 수이푼강 지역을 통과하면서, 육성촌이 있었던 지점을 어림하며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한인들의 삶을 떠올린다. 육성촌은 1869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건너온 한인들이 이주하면서 무성한 황무지를 개척하여 일구어낸, 연해주 지역에 채소와 식량을 공급했던 자랑스런 한인마을이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동포들은 시베리아 서쪽 끝까지 뿔뿔이 흩어졌다. 화자는 열차를 타고가면서 오늘에도 “홀로 잠들지 못하고 꼿꼿이 정좌한 사내와/그에 기대에 뒤척이는 또 다른 사내를 본다” 그들은 분기점(하얼빈)에서 필시 한쪽은 시베리아로 한쪽은 중국 쪽으로 “엇갈리고 갈라지는 운명의 그림자”를 만들리라. 그동안 “길고 혹독한 겨울과 질척질척한 짧은 여름을/수 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뭇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엇갈리고 뒤틀리고 사나운 그 밤”을 만들었을까? 시인은 그 슬프고 아픈 한인들의 이야기를 기차의 시점에서 잡음으로써 이용악 등의 북방시편의 계보를 잇는 시편을 만들어냈다. 이 부분이 곽효환의 득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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