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1756-1791)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소금광산이 있는 작은 도시였다. 부친인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1787)는 잘츠부르크 궁정의 악사였고, 모친은 전업주부였다. 둘 사이에 7남매를 두었지만, 모차르트와 그의 누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1751-1829), 일명 ‘난넬’만이 생존했다. 레오폴트는 이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동생이 누나보다 배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레오폴트는 아들 모차르트가 천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지원 하에 아이들을 데리고 유럽연주여행에 나선다.
연주여행은 모차르트에게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되었다. 여러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기라성 같은 음악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런던 바흐’로 알려진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C.Bach/1735-1782)에게 교향곡 작곡법을 배웠고,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 가수였던 만추올리(1720-1782)에게는 성악을 배웠다. 또는 미츨리베첵(1731-1781)에게는 오페라 작법을 배웠고, 마르티니 신부(1706-1784)에게는 대위법을 배웠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 다양한 음악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덕에 모차르트는 역사상 성악과 기악 분야에 두루 탁월한 작품을 내게 된 거의 유일한 음악가가 되었다.
10년 동안의 연주여행을 통해 음악에 대한 눈을 뜨게 된 청년 모차르트에게 잘츠부르크는, 그의 욕망을 실현하기엔 너무 작은 도시였다. 더욱이 잘츠부르크에 새로 부임한 콜로레도 대주교(1732-1812)는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자라 카톨릭의 분에 넘치고 사치스런 의식을 배격했다. 그래서 궁정극장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차르트는 호시탐탐 잘츠부르크를 뜰 생각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의 만하임은 근대적인 오케스트라가 태동된 곳이다. 모차르트는 이곳을 배회하다 첫 사랑 알로이지아 베버(Aloysia Weber/1760-1839)를 만나게 된다. 알로이지아는 베버 집안의 네 자매 중 둘째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연주회용 아리아인 ‘테살리아의 백성들이여!(Popoli di Tessaglia!)’를 작곡하여 선물한다. 그런데 현재 이곡은 가장 높은 음을 내는 아리아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알로이지아는 이런 난곡을 소화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성악가였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오페라 성악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차르트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 지루한 삶을 살던 모차르트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781년 바이에른 선제후 칼 테오도르(Karl Theodor)에게서 오페라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a)’를 의뢰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잘츠부르크 밖에서 작품의뢰가 들어 온 것이다. 모차르트는 당시 오페라 개혁의 기수였던 글룩(1714-1787)의 주장대로 이야기가 있는 탄탄한 구성을 가진 오페라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오페라 거장으로서의 첫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