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에 쓰기 위한 작품을 고르는데 망설인 시간이 단 3초도 되지 않았다. 컨텐츠가 바다를 이루는 세상이다. 단순 흥미용 영상부터 화려한 CG와 연출, 철학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 등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데 변화를 주고 큰 방향을 제시한 작품을 고르라면 떠오르는 영화가 몇 없다. 그런 가운데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가 고등학교 졸업 뒤 만난 인도영화 ‘세 얼간이’ 가 유일하다. 제목 그대로 세 얼간이는 인도 최고 공과대학 ICE에 진학한 세 친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란초는 공학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고 뛰어난 재치와 두뇌로 여러 사건을 벌인다. 개성은 무시한 채 성적만을 강조하는 학교에 맞서며 틀에 얽매이지 않는 란초를 통해 여러 가지 재미를 느끼고 사회 불평등에 대한 해소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거나, 무엇이건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자녀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교훈들이 녹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내 인생에 영향을 준 가르침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신입생들을 마주한 ICE 총장 바이러스는 ‘인생은 레이스’ 라는 말을 한다. 그는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차별하고 끊임없이 경쟁만을 강조한다. 결국 틀에 박힌 과제가 아닌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던 한 학생이 총장으로부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채 자살하고 만다. 학생의 죽음은 곧 아까운 재능과 개성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한편 잘못된 교육 시스템과 압박의 문제도 있지만 학생의 죽음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학생이 죽게 내버려 둔 주변의 무관심이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학생을 알아주는 교수나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학생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 순간 나 또한 그때까지 학창시절에 대한 반성이 들었다. ‘인생은 레이스’라는 말처럼 그저 앞만 보고 공부만 하며 끊임없이 달려왔다. 오로지 수능이라는 교육 시스템 속 목표에만 얽매여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운 좋게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때를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까지 크게 친했던 친구가 없어서 슬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세 얼간이들은 달랐다. 모두가 다 알아주는 공과대학에 진학했으면서도 성적보다는 엉뚱한 취미와 소질에 얽매이며 바보스럽게 보이지만 그들은 서로가 곤경에 처했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었다. ‘라주’가 정학을 맞을 위기에 똑같이 자살기도를 하고 떨어져 뇌사상태에 빠졌을 때도 친구들이 ‘우린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라며 혼신을 다해 간호해준 끝에 기적적으로 일어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이전 학생이 쓸쓸하게 죽은 것과는 큰 대조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데 주변의 관심과 사랑이 필수적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관람한 이후로 내게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로는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을 잠시 돌아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결국 나에게도 큰 행복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와 다르게 대입 뒤로부턴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동아리나 외부 활동에 더 관심을 가졌는데 이때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혼자라면 할 수 없었던 값진 경험들을 많이 했다. 그것들이 지금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영화는 비록 인도에서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지금 심한 경쟁으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홀로 방황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꼭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한다. *박진호 씨 :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대학원 재학 중. 아버지의 고향이자 할아버지·할머니가 계시는 경주가 좋아 자주 경주 나들이를 하고 있으며 영화와 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삶을 돌아보는 휴식이라는 자세로 학업에 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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