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5일의 대통령 선거를 향한 열기가 뜨겁다. 여당인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은 이재명 전 경기지사로 낙착이 되었다. 야당인 국민의 힘에서는 8명에서 4명으로 좁혀진 후보들 사이에서 치열한 토론회가 전개되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지역 토론회가 마지막이고, 여론조사를 거쳐 11월 5일 최종 국민의 힘 제20대 대통령 후보가 선출된다.
그런데 후보들간의 경선토론회를 보면서 한 가지 강렬한 느낌이 든다. 왜 모든 후보들은 하나 같이 저토록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문제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문제도 있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보자. 상당한 기간 전부터 한국은 자살률 1위의 국가이고 그 중에서도 젊은 층의 높은 자살률은 우리 가슴을 처절히 찢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가슴에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을 불어넣어 이런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좀 더 국민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하며 그들의 아픔을 위무하려는 용기와 헌신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당의 이재명 후보에 관해서는 지금 그를 둘러싼 대장동 비리 의혹에 우리의 온 정신이 뺏겨있다. 그래서 야권 후보들을 보며 바람직한 대통령상(像)에 관해서 좀 말해보자.
유승민 후보는 많은 훌륭한 자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경제전문가라는 자부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가 타 후보에게 질문하는 태도가 너무 오만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홍준표 후보는 지금이 어떤 세상인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배우자를 공공연히 ‘각시’라고 부르며, 마초기질을 한껏 자랑했다. 그에게 세계보편화의 강한 흐름을 보이는 LGBTQ를 포함한 성적 소수자의 공정(equity)요구, BLM(Black Lives Matter)의 강한 시위를 기반으로 하는,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분노의 표출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얼마만큼 되어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윤석열 후보 역시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열어가는 것일까에 관하여 단 한 번도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후보가 좀 미숙하더라도 그 캠프 안에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이를 영입하여, 공약이나 후보의 발언에서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나타나게 하고, 상상력이 빚어내는 공동체 장래의 따뜻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는 어느 누구도 없다.
얼마 전 OED(Oxford English Dictionary)가 한국어를 26개나 대량으로 사전에 올렸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는 OED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예라고 한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세계를 향해 퍼져나가는 한국의 문화 전반을 ‘케이 웨이브’(K-wave)로 표시하며, OED는 이 물결에 올라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외 우리는 BTS가 거둔 엄청난 성공이나 최근의 오징어게임이 얼마나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는가를 잘 안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는 마땅히 이렇게 우리가 세계를 향해 퍼뜨리는 문화현상에 대한 소양이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하며, 어떻게 공장을 짓고 소득을 증가시킬 것인가 하는 테두리 속에만 갇혀서는 너무 답답하다. 그렇게 하여 한국이 세상의 졸부(猝富)국가가 된들 우리가 지금 심각하게 겪고 있는 공허함은 더욱 커질지 모른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우리가 문화강국이 됨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고 판단할 때 그가 인문학적 견지에서 어느 정도 우리 사회 지도자로 손색없는 자질을 갖춘 사람인가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그 자질은 결국 그의 ‘인간적 품격’이다. 그가 남의 아픔과 슬픔을 내 것으로 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 인간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자.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대외의존적인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성숙한 통찰이 있는지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국제회의에 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지도자 간 신뢰구축의 기회를 맹탕으로 놓쳐버려 국익을 저해하는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품격있는 대통령의 탄생을 보고 싶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에 깔렸을 때 경제나 법제도에 관한 그의 식견이 빛을 발하고, 그가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