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헤어살롱
장남숙
스팸메일 지우듯 싹둑싹둑 잘라내도낮 불 밝은 살롱은 루머(rumor)가 크는 온실엉터리 가짜뉴스가 물들이며 치장이다오랜 날 기다린 듯 끈 풀린 수다들이해가 긴 오후만큼 끝없이 늘어지고미용사 장갑 낀 손만 귀 닫고 한창이다친친 감는 머리카락 뜬 소문 리플레이들통 난 통화내용 진짜라도 어쩔 건지까맣게 염색한 세상 알고 보면 새치다
-‘진짜’라는 이름의 ‘가짜’
좋은 우리말 ‘머릿집’이나 수수한 ‘미장원’을 놔두고 왜 하필 ‘헤어살롱’인가? 그것도 ‘진 헤어살롱’이라니! 진짜 헤어살롱? 어쩐지 수상한 냄새가 난다. 그말부터 가짜다. “스팸메일 지우듯 싹둑싹둑 잘라내도”의 첫출발부터 범상치 않다. 우리는 무더기로 송신되는 소식과 뉴스기사를 매일이다시피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 받는 일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미확인된 가짜 정보, “루머(rumor)”가 아닌가?
그것은 잘라내도 금방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성질을 닮았다. 그러니 “엉터리 가짜뉴스가 물들이며 치장”하는 곳은 실제로는 미장원이 아니라 우리 세상 곳곳이다. 가짜로 뒤덮였으니 “까맣게 염색한 세상 알고 보면 새치다” 같은 진술도 나올 수 있다.
시인에 의하면 ‘헤어살롱’은 날마다 루머라는 욕망이 스멀거리며 자라나고 “뜬 소문(이) 리플레이”되는 곳이다. “낮 불 밝은”이라는 표현에는 불은 밝으나 실은 가장 음침한 곳이라는 통찰이 들어 있다. “오랜 날 기다린 끈 풀린 수다”를 위해 입은 얼마나 근지러웠을까? “해가 긴 오후만큼 끝없이 늘어지”면서 손님들과 미용사는 끝도 없이 거짓 소문을 물어나르고 낄낄거리며 즐긴다. 이 자리에 “미용사 장갑 낀 손만 귀 닫고 한창이다”에서 나타나는 엉뚱함은 타인에 대한 험담 욕망에서 귀를 닫은 것은 장갑 낀 손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거짓과 과장에서 자유로우려면 비날 장갑이 되는 수밖에 없다. 루머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이다. 아마 오늘은 함께 있었으나 내일은 그 자리에 없을 사람도 가짜 소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들통 난 통화내용 진짜라도 어쩔 건지”의 진짜는 진실이라는 뜻과는 반대가 되는 그 소문이 진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간 섬뜩한 의미를 풍긴다. 그러니 이 시조가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까맣게 염색한 세상은 알고 보면” 우리의 민낯(‘새치’)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진 헤어살롱’이라는 말 자체는 이 당대의 일상에 대한 블랙 유머가 아닐 수 없다.
가짜의 허울로 가득한 곳곳에서 번식하는 인간의 욕망은 주로 타자를 향한다. 남의 말을, 그것도 거짓으로 부풀려하는 동시대인의 번드르르한 욕망의 외피 속에서 우리는 가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에 대해서는 관용하고 남에 대해서는 사정없는 사람들. ‘나’도 벗어날 수 없는.
염색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동시대의 풍경과 인간관계를 냉정하게 드러낸 가편이다. 무엇보다 각 수의 종장이 단단하고 울림이 큰 어절로 잘 박혀 있어 읽는 재미와 깊이를 더한다.
오늘날 일상의 정수를 이렇게 직핍해나가는 이 시에서 ‘헤어살롱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시인 특유의 공간 창조능력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