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고1때 였던가?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과 취미를 적어내는 문항이 있었다. 시골에서 보고 자란 건 농사밖에 없었으니 그냥 ‘똑똑한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농부를 수식하는 ‘똑똑한’이란 형용사가 꼭 들어가야 했다. 농촌에서 늘 당하고만 사는 사회적 최약체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일까? 아니면 공부를 못한 열등생의 역설적 표현이랄까. 하여튼 그랬다. 취미는 작가와 음악이 꿈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책을 좀 읽었다고 ‘독서’. 그리고 일찍이 팝송을 좋아했기에 ‘음악감상’이라 적었다. 요즘처럼 문화가 그리 다양하지도 않고 그 폭도 제한적이니 위 두 가지 취미 외에 운동, 그림, 수집, 또 뭐가 있을 텐가. 독서가 취미라고 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시골 중학교 다닐 때다. 아홉 살 차 큰누나가 할부로 구입한 1권 ‘세익스피어’부터 30여권에 달하는 세계문학전집이 집에 있었다. 6포인트 활자 정도 크기에 세로로 빽빽하게 써내려간 벽돌만큼 두툼한 책은 중학교 학생의 문해력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똑똑한 농부’가 되기 위해 마냥 읽어 내려갔다. 미래의 ‘똑똑한 농부’는 농촌의 작은 공간속에서도 자부심만큼은 풍선처럼 부풀어 취미를 ‘독서’라고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지 그랬다. 그러다 큰 도시 고교 진학 후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독서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기에 그건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다’는 말씀을 듣고 독서가 취미에서 빠졌다. 숨쉬기가 취미가 아닌 것처럼 책도 생활 속에서 당연히 가까이 하는 것이다. 좀 더 그럴싸하게 표현한다면 독서는 의식적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뇌의 무의식적인 활동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선생님 말씀이후 독서한다는 말 역시 거의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취미가 늘 보이듯 그저 술이나 마시고 자전거나 타고 산에만 다니는 바람에 체력 좋고 심지어 정력까지 강한 사람(검증 안됨ㅋㅋ)으로 보이게 되었다. 가을,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 왔다. 공기 마시듯 무의식에서 하는 거라면 독서의 계절이란 가설이 따로 있겠는가마는 계절과 상관없이 책을 읽는다. 나에겐 불면증이 있다. 학창시절과 군시절 제외하고 성인이 된 후 하루 6시간이상 잠을 잔적이 없을 정도다. 보통은 하루 4~5시간 잔다. 웃기게도 불면증 치료약으로 머리맡에는 항상 책이 있다. 잠을 청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신경증이나 히스테리 증상에 걸리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악조건도 잘만 활용하면 선기능이 될 텐데 말이다. 오히려 책을 읽을 수 있어 불면증이 너무나 고맙다. 또 하나, 기왕에 눈뜨고 있는 시간이 많으니 더 오래 산거 아닌가? 계산해보자. 하루 2시간을 덜 잔다면 매달 60시간, 일 년이면 1개월이다. 똑같이 60년을 살았다면 다른 사람보다 5년을 더 사는 것이다. 물론, 생명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잠을 잘 때도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니 죽은 뇌와는 다르다. 독서의 또 하나 장점은 세상에 대한 확장이다. 살아온 경험만으로는 우리가 보는 눈을 확장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경험에 더하여 독서를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더 깊이 있게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풍부한 경험과 독서, 깊은 사유가 인생을 좀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이상은 이건기 씨가 쓴 독서에 대한 소감이다. 이건기 씨는 평생 동안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을 데미안으로 꼽았다. 데미안은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 1877~1962)가 1919년 발표한 작품이다. 주변의 유혹과 억압에 의해 불량한 삶을 살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선악을 벗어난 삶의 원리를 깨달아 가는 성장소설이다. 이건기 씨는 싱클레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데미안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처럼 사회를 향한 다양한 평가를 페이스 북을 통해 드러내며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지난 2018년 치른 지방자치선거에서 포항 시장에 도전하기도 했던 이건기 씨는 지난 해 겨울 이후 다시 똑똑한 농부가 되기 위한 삶을 시작하며 고향인 상주로 돌아가 안착했다. 데미안 소설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말이 이건기 씨의 변화를 대변하는 듯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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