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서 고전파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즉 ‘하모베’다. 하이든이 바로크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전파 시대를 열었다면, 모차르트는 고전파의 골격을 완성했고, 베토벤은 여기에 살을 붙였다고 할 수 있다. 하이든(F.J.Haydn/1732-1809)은 나머지 두 사람과 짧게나마 사제의 인연을 갖는다. 하이든부터 살펴보자. 하이든은 바로크시대(1600-1750)의 끝물에 태어났다. 부친은 마차 바퀴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모친은 귀족 집안에서 가사 일을 도왔다. 하이든은 어릴 적에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주변 사람에게서 카스트라토 제안을 받기도 했다. 카스트라토가 되기 위해서는 ‘거세’라는 반인격적 행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카스트라토는 당대 최고의 인기직종이었고, 성공만 하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었기에 가난한 집안에서 능히 선택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물론 하이든은 카스트라토가 되지 않았다.) 하이든의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가문이 있다. 바로 헝가리계 귀족 집안인 에스테르하지 가문이다. 하이든은 우리 나이로 서른 살(1761년)에 이 가문에 들어와 거의 환갑까지(1790년) 30년을 일했다. 그는 가문의 귀족이 시키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일을 했다. 안정된 환경에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는 일은 아니었다. 그는 차츰 귀족의 신임을 얻어갔다.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작곡을 만들 수 있었고, 외부활동도 가능했다. 유럽에 그의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 귀족이 악단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자 하이든이 묘수를 냈다. 단원들이 연주를 하다가 한사람씩 속속 퇴장을 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엄연히 귀천의 차이가 존재했던 시절이라 귀족에 대한 불경죄가 성립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귀족은 얼른 알아채고 휴가를 허락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류 최초의 오케스트라 파업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바렌보임(D.Barenboim/1942-)은 하이든의 이러한 간 큰 파업을 현대에 재연했다. 하이든 사망 200주년인 2009년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에서다. 이때 ‘고별’ 교향곡의 4악장이 공식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고, 단원들은 지휘자인 바렌보임을 무시하듯 모두 빠져나간다. 결국 무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바렌보임은 황망하여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관객들을 쳐다본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코믹연기에 관객들은 큰 박수를 선사했다. 빈필 신년음악회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 탄생한 것이다.(유튜브에서 찾아보세요.)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