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아들이랑 미장원엘 갔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다른 가게로 갔다. 같은 학교 교복 입은 여학생도 안 보이고 대기자도 한 명뿐인데 거기는 또 싫단다. 집에 가자는 녀석을 겨우 내 오랜 단골집으로 이끌었다. “고구마는 어디가 비싸고, 누가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완전 새 사람이 됐고…” 오늘도 사장님은 머리를 매만지며 온 동네일에 간섭 중이었다. “학생, 우애 해주꼬?”라는 사장님의 말에 아들은 “알아서 해주세요.” 한다. 녀석이 귀찮을 때 잘하는 표현이다. 신문을 보고 있던 나는 ‘그러면 후회할 텐데’ 싶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소중(!)하게 지켜온 앞머리 삼분의 일이 사라졌다! 그 밑에서 흔들리는 작은 눈이 슬퍼 보였다. “앞이마가 훤해 여자 친구들한테 인기 많겠네!” 사장님의 너스레에도 녀석의 눈은 불만에 차 이글거린다. 아들이 주문한 ‘알아서’는 사장님의 ‘알아서’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어릴 적 내 눈에 어머니는 손대중으로 대충대충 요리를 하셨던 것 같다. 손으로 쥐어보고 들어 보고 또 눈으로 어림으로 헤아리는 눈대중으로 말이다. 없는 재료로 뚝딱 만들어내던 그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었는지... 알아서의 음식 버전이 눈맛이고 손맛이다. 그때는 그런 동네의 숨은 요리 고수들이 참 많았다. 그들의 자긍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TV 요리 프로그램의 등장이다. 감(感)과 경험치로 만들어내던 잡채가 이제 마른 당면 200g, 소고기 채끝살 125g에 양파 1/2개, 카놀라 오일 4 숟갈… 하는 식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시어머니 스타일이 저물고 며느리 스타일의 공식 등장이다. 수치화·표준화로 누가 요리를 하든 일정한 맛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음식의 다양성이랄까 숨은 고수들의 비법은 아쉽게도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마치 한 시대의 기준이 새 시대로의 전환을 막아버리는, 오히려 장애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주관성이 배제된 표준화가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김치는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즉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판소리(2003), 아리랑(2012), 씨름(2018)만큼 자랑스러운 한국 먹거리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환호할 만하다. 하지만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2013년)’로 등재 범위를 한정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역적으로나 계절적으로나 김치는 그 다양성이 생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지역별로, 계절별로 생산되는 채소가 다양하다. 그 위에 양념의 종류, 그 배합 비율이나 숙성 방법도 다양하다. 같은 지역이라도 집집마다 생산과 전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300여 종류 이상으로 풍성하고 두터운 김치 문화 이면엔 다양한 손맛 그 화려한 변주가 자리 잡고 있다. 가령 봄에는 봄동이나 얼갈이김치가 맛있다. 한국의 여름은 무척 덥기 때문에 수분이 부족해지기 쉬워 여름은 시원한 열무나 오이소박이 김치가 제격이다. 침대가 아니라 김치야말로 과학이다. 가을에는 고추나 깻잎, 쪽파 김치가 훌륭하다. 총각김치나 고들빼기도 빠질 수 없다. 겨울에는 양념을 넉넉하게 쓴 김장김치를 먹는다.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보충에 제격이다. 김치로 대표되는 우리의 ‘손맛’ 정신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게 얼마 전 도쿄 올림픽이다. 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우리나라 안산 선수는 러시아 선수와 세트 점수 5-5 상황까지 몰렸다. 이제 마지막 한 발로 승패를 결정하는 슛오프(shoot-off:연장전)다. 그 중요한 순간에 안선수는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쫄지 말고 대충 쏴.`였다. 알다시피 그까이꺼 ‘대충’ 쏜 화살은 금메달이 되어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 9점 이상만 쏘면 금메달이 확정되는 상황이다. 팀의 맏형 오진혁 선수는 마지막 활을 쏘면서 바로 “끝!”이라고 외친다. 과녁에 화살이 박히기도 전에 끝이라니! 손끝은 이미 메달 색깔을 알았던 모양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손맛의 민족이고, 양궁은 그 사실을 아홉 번 연속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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