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수확과 추수의 계절, 곳곳에 곡식이 여물고 온갖 과실이 탐스런 빛을 낸다. 사과, 배, 감, 대추, 밤은 가을의 대표적 먹거리이자 제사상을 지키는 접신(接神)의 과실들이기도 하다. 이런 과실과 달리 가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숨은 열매가 있으니 그게 바로 꿀밤, 도토리다.
도토리는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흔히 참나무과에 속하는 큰 키의 활엽수들이 도토리를 맺는데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참나무과 수종이다. 나무의 형태는 도토리의 모양이나 나뭇잎의 모양을 보고 아는데 잎이 밋밋하고 도토리에 털이 달린 상수리 나무와 굴참나무가 잎이 굴곡진 다른 참나무류들과 구분되는 정도고 다른 참나무들은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도토리는 사람이 먹기에는 떫은맛이 강해 그냥은 먹을 수 없어서 주로 말려서 가루를 낸 다음 이것을 우려내고 쪄서 묵으로 만들어 먹는다. 애초에 사람이 쉽게 먹을 수 없게 만들어 것은 이게 사람보다는 다람쥐나 청설모 등 설치류 동물들의 먹이에 적합하도록 만든 자연의 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10월 11일, 권원수 씨의 페이스북에는 황성공원에 걸린 현수막이 실렸다. 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양보하자는 현수막이다. 그런데 막상 황성공원에는 도토리 줍는 분들이 많았다고 안타까워한다. 심지어 눈에 띄는 도토리만 줍는 것이 아니고 비를 무릅쓰고 막대기로 낙엽이나 풀까지 뒤집으며 도토리를 주워 볼썽 사나왔던 모양이다.
“아지매요 꿀밥 줍지 마이소”
보다 못한 권원수 씨가 한 마디 한 모양이다. 여기에 돌아온 대답에 씁쓸한 웃음이 난다.
“꿀밤 안 줍고 도토리 줍는데요!”
다람쥐를 위해 경주시가 일부러 현수막을 치고 도토리 저금통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도토리 줍는 사람들 눈에는 그런 게 띄지 않는 모양이다. 따지고 보면 도토리묵은 먹거리가 귀한 시절의 궁여지책이다.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사람을 위한 먹거리가 풍족해진 세상이 되었고 더구나 황성공원은 경주가 아끼는 시민의 휴식처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양보하면 귀여운 다람쥐들의 공원을 활보하면서 도토리묵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