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건립 추진 움직임이 일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102년 전 경주에서 전개된 3·1독립운동은 1921년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과 민족운동인 신라고적환등회로 이어지는 등 특별하고도 독보적인 운동으로 조명받고 있다. 이 때문에 경주 3·1독립운동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기념 조형물을 반드시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경주시기독교연합회, 경주제일교회, 경주시기독문화협회, 경주예총 등은 최근 경주 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건립을 경주시에 제안했다. 이들 단체는 “102년 전 경주에서 애국애민 정신을 실천한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이를 후세에 알리는 것은 의미가 깊다”며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고 경주의 소중한 역사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경주 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건립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기념 조형물 건립부지도 구체화했다. 바로 도심 내 신한은행 대각선 맞은편 시유지다. 이곳 부지는 경주 3·15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소라는 것. 실제 경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시기는 1919년 3월 15일. 장소는 당시 작은 장이 열리던 노동리 봉황대였다. 앞서 3월 11일, 12일 밤 노동리 교회당(현 경주제일교회)에서 두 차례 비밀모임 끝에 13일 경주읍 큰 장날 거사를 일으키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주동 인물들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13일의 만세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당초 13일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장소이면서,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논의한 현 경주제일교회와 인접한 이곳 부지를 지목한 것이다. 경주기독교연합회와 경주제일교회, 경주시기독문화협회 등이 기념 조형물 건립 추진에 적극 나선 이유도 분명하다. 당시 경주 3.15 만세운동을 기독교인들이 주도했기 때문. 독립기념관 자료와 경주제일교회 90년사 등에 따르면 1919년 3월 15일 경주 만세운동은 당시 노동리 교회(현 경주제일교회)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1919년 3월 11일, 12일 노동리 교회당에서 박래영·윤기효·박문홍 세 사람은 성도 5~6명과 비밀모임을 갖고 경주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또 김성길, 김술룡 등도 3월 13일 거사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당시 주동 인물인 박문홍 등 16명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거사는 무산됐다. 이후 3월 15일 읍내 작은 장이 열리는 봉황대 주변에서 오후 3시 30분 박봉록, 서봉룡, 박무훈, 최성렬, 김억근 등 청년 30여명이 주도해 태극기를 앞세워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주동 인물들은 경찰에 체포됐고, 현재 경주시청의 수형자 명부에는 이때 검거된 주동인물 가운데 박영조·박문홍·김학봉·조기철 징역 10월, 이승태·최수창 징역 8월, 손석봉·최성열 징역 6월, 김성길·박봉록 징역 5월, 전성필·김천근 징역 4월, 김억근은 징역3월(집행유예1년)을 언도받아 각각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는 기록이 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모두 경주제일교회의 전신인 노동리 교회 박영조(호적 박래영) 당시 담임목사, 박문홍 영수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이었다. 경주기독교연합회 등은 이 같은 기록이 바탕으로 ‘경주 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건립에 적극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점득 경주시기독문화협회 회장은 “경주의 1919년 3월 15일 독립만세운동은 금관총 출토유물 경주유치운동, 신라고적환등회의 전국적 전개로 이어지며 독보적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경주 3·1독립운동 기념조형물 건립을 통해 경주의 소중한 역사와 자긍심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 3·15독립운동은 애국애민 정신을 실천한 자랑스럽고 소중한 우리의 역사”라며 “기념조형물 건립과 관련해 그 역사성과 상징성, 건립부지, 시민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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