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남씨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1748~1812)는 1792년 늦가을에 갈곡(葛谷)의 어르신 여러분과 단석산․주사산 등을 두루 유람하고 유단석산기(遊斷石山記)․유주사산기(遊朱砂山記) 등 기록을 남겼다. 주사산은 하지산(下地山)·부산(富山)·오봉산(五峯山) 등으로 불리며, 현재 여근곡(女根谷)·옥문지(玉門池)․․주사암(朱砂庵)·주암(朱巖) 등 신라와 관련된 어휘 및 트레킹길로 유명하다.게다가 고승과 궁녀 및 공주와 복회(福會) 등 기이한 전설이 얽힌 단사(丹砂)․주사(朱砂)의 주사암 창건설화 그리고 김유신 말 발자국과 보리술의 일화 등은 주사산의 신비로움을 더 한다. 오봉산은 지맥석(持麥石:마당바위)이 유명한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산의 남쪽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주암사(朱巖寺)가 있었고, 그 북쪽에 대암(臺巖)이 있어서 깎아지른 듯 기이하게 빼어나서, 먼 산을 보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학을 타고 하늘에 올라 온갖 물상(物象)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대석(臺石)의 서쪽에 지맥석이 있으며, 사면이 깎아 세운 듯 올라갈 수는 없이 위태롭고, 그 위는 평탄하여 백여 명이 앉을 만하다”전한다. 치암선생은 이 마당바위를 ‘타맥(打麥)’으로 표현하였고, 이에 대한 소상한 설명과 주사암의 배치와 주변의 정보 등을 「유주사산기」에 면밀히 기록하였다. 필자는 지역행사의 일환으로 거행된 [단석산 진달래축제]를 통해 지역의 명산 단석산과 오봉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초입부터 험난한 산세의 난관에 부딪혔지만, 짙은 진달래꽃과 김유신의 유적 등 기이한 볼거리는 산행의 피곤을 잊게 하였다. 이어서 오봉산의 주사암과 마당바위는 사방의 시야가 탁 트이고, 가슴이 호방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하였다. 만약 지금까지 경주에 살면서 단석산과 오봉산을 아직 오르지 못하였다면, 이번 가을 산행으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산에 대한 설명은 필자보다 치암 남경희선생의 글이 더욱 재미가 있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유주사산기(遊朱砂山記) - 치암 남경희 주사산은 계림부의 서쪽 40리에 있다. 명활산을 따라 아래로 바라보면 다섯 봉우리가 붓처럼 함께 솟았는데, 이곳이다. 단석산에서 다음날은 송전재사(松田齋舍)에서 묵었다. 뒷산을 따라 올라서 깊은 솔숲을 뚫고 들어갔다. 솔숲을 지나 벌여 앉아서 넓은 들판을 바라보았다. 다시 산허리에서 보통 걸음으로 수십 걸음을 가면 바위굴이 있는데, 십여 명의 사람이 비를 피할만하였다. 앞에는 안장 바위가 있었다. … 남쪽으로 기이한 바위 돌을 바라보면, 웅크린 듯, 선 듯하고, 혹은 사람이 선 듯, 사람이 선 것은 돌장군이었다. 옛날 두 장군바위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큰 것이 무술년에 까닭 없이 스스로 부러졌다고 한다. … 한 암자가 암석 사이에 솟아있었다. … 스님이 나와 맞이하여 암자에 이르렀다. 암자의 제도는 남향의 3칸 집으로, 그 동쪽에 누각이 2칸 있고, 서익(西翼)을 돌아 북쪽으로, 부엌과 이어져 방이 된다. 방은 누추해 앉을 수 없었다. 그 서쪽에 법당 3칸이 있는데, 두 기둥 사이에 삼존불을 앉혔고, 십육나한(十六羅漢)이 좌우에 모시고 서 있으며, 면마다 모양이 달랐다. 어떤 나한은 삼존의 좌측에 있는데, 앞에서 모양을 찬찬히 바라보면 매우 기이하였다. 법당의 서쪽에는 석벽이 있는데, 너비가 10여장, 높이는 3분의 2가 되었다. 석벽을 따라 꺾어 동쪽으로 바위 봉우리가 우뚝 서 있는데, 암자의 북쪽에 수십 장 높이로 고름(高廩:높다란 곡간)이라 하고, 여러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었다. 석벽의 북쪽에 높은 바위가 있는데, 비교하면 고름의 절반이었다. 스님이 칠성(七星)에서 기도하는데, 그 위를 ‘칠성대(七星臺)’라 하였다. 석벽을 빙 둘러 서쪽으로 꼬불꼬불 수십 걸음을 가면 큰 바위가 있는데, 위는 평평하여 100여 명이 앉을 만하였고, ‘타맥(打麥)’이라 하였다. 서남쪽은 깎아지르고, 굽어보면 기운이 서늘해 오래 서 있지 못하였다. 타맥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면 바위 봉우리 3개가 있는데, 칠성대와 고름을 아울러 다섯이다. 고름의 동쪽에 또 2개의 바위가 있으니, 그 실상은 일곱 봉우리이다. … 다섯 봉우리는 오를만하고, 오직 가운데 봉우리는 깎여서 범할 수 없으니, 대개 고름에 오른 후에야 주사산 유람의 극치가 된다. 바위의 세력이 비록 깎여도 오히려 꼬불꼬불 계단을 이루니 걸을 만하였기에, 나는 의관을 풀지 않고, 지팡이 짚고 천천히 올랐다. … 어두워져서야 재사에 투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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