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의 새로운 코너 ‘나의 책 나의 인생’이 지나치게 딱딱해졌다. 이 코너는 일반인의 범주에서 순수히 자신이 느끼는 책이나 영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인생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간혹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고품격 서평이나 영화평론의 장으로 흘렀다. 이에 대해 도우성 씨<인물사진>의 이번 호는 가히 혁명적이고 본 코너의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 ㈜엠브리드 도우성 대표이사는 어린 시절 서부영화를 즐겨보았고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쿼바디스 류의 스케일 큰 영화들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한 모멘텀이 된 것은 만화 ‘요철발명왕’이었다고 소개한다. “윤승운 화백의 이 만화책은 고교시절 저를 자연계로 선택하게 했고 급기야 공학도로 인도했습니다” 도우성 대표가 만화를 통해 인생의 전환계기를 얻었다고 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도우성 대표는 실제로 경주고등학교 자연계열 출신으로 대학에서 화학공학과를 전공했고 한국화약그룹에서 연구직으로 활동하다 현재 ㈜엠브리드를 경영하며 유무기복합재질인 ‘M글루’라는 접착제를 개발해 시판 중인 강소기업을 이끌고 있다. ‘요철발명왕’은 윤승운 화백이 1975년 만화잡지 어깨동무에 발표한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은 만화책이다. 주인공 ‘요철이’와 조연격인 ‘맹물이’가 어린아이들이 궁금해 할 만 한 생활주변의 기구나 과학이야기를 코믹하고 쉽게 설명한 일종의 어린이 눈높이용 탐구만화다. 만화의 내용은 똑똑한 요철이가 맹물이의 엉뚱한 질문에 답해 기구의 원리나 과학적 이론을 어린이 수준에 맞게 설명하는 것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결국은 맹물이가 엉뚱한 발상이나 행동으로 독자들을 웃기는 것으로 끝난다.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유행하던 시절인 만큼 그림체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졌고 진지한 탐구 끝에는 반드시 반전의 웃음을 담아 재미를 더했다. 도우성 대표가 만화를 통해 인생의 전환계기를 얻었다고 술회한 것과 상관없이 도우성 대표가 만화를 탐독하던 시절은 만화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나쁠 때였다. 올해 55세의 도우성 대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1970년대 중후반이다. 이 무렵은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만화잡지들이 출판되었지만 대부분 만화는 ‘만화방’에서 읽혔다. 한자어로 ‘대본소’라고 불리던 만화방은 만화방에 가서 읽거나 빌려서 읽는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수행했다. 당시의 대부분 학부모들은 만화방 가는 것을 내놓고 말리는 분위기였다. 만화 자체가 공부를 방해한다는 선입견이 팽배하던 시절이고 만화방에서 만화 빌려 읽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만화방은 농땡이 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았고 실제로 학교 빼먹은 학생들이 만화방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니 이 시대 만화방과 만화는 이래저래 눈 밖에 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 만화방에는 난잡한 성이 묘사된 무협소설도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무협소설류가 눈총을 받으면서 만화방에 대한 시선이 더 나빠졌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신동우 화백은 만화 ‘차돌이’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었고 윤승운, 길창덕, 박수동, 오원석, 김삼 화백 등이 명랑만화라는 장르로 대세를 이끌었다. 고우영의 역사물, 이두호 화백의 토속물, 이상무 화백의 스포츠 만화 등은 새로운 만화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역시 만화에 대한 인식은 어둡기만 했다. 그런 시대 도우성 대표가 만화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잡았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이후 만화는 이현세 화백을 비롯 허영만, 박봉성 등 인기 작가들이 등장한 80년대는 만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만화가 영화와 드라마로 재생산되며 바야흐로 문화전반의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21세기는 웹툰과 애니메이션 시장이 독보적으로 커지면서 만화가 모든 독서 장르를 선도하는 매체가 되었다. 역사와 문화, 과학과 시사, 경제와 각종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 낸 교육만화도 지천으로 널렸다. 도우성 대표가 어린 시절에 이런 만화풍토가 마련되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변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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