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빛에 그리운 얼굴 얼비춰보는 추석명절, 아파트 아래위층으로 아이들 웃음소리 반갑고 정겹게 뒹굴었다. 세 자녀, 다섯 손주들 번갈아 드나든 필자 집도 웃음꽃 범벅이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손주들 등쌀에 집안은 초토화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 겨레의 즐거운 풍속도는 코로나방역을 방패삼아 조심스레 고향을 드나들었다. 연휴를 즐기려는 관람객들 마스크를 꼭 쓰고 세계문화유산 불국사 추억 찍기에 꽃을 피운다. 극락전 회랑을 짚으면 토함산정상이 저 멀리 수려하다. 골기와지붕 우뚝하게 푸른 솔 둘러친 소나무 풍광이 짜임새 서린 맵시다. 회랑의 기둥은 소나무둥치, 쳐다보는 처마는 온통 솔가지 푸른색이다. 인간과 가장 친화적인 소나무를 통째로 옮겨 놓은 형상이다. 정적인 것을 흠모하는 동양인이 좋아하는 배경을 극락전회랑이 안고 간다. 토함산 풍경 뒤로하고 축대 쪽문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석축 석단 띠 장식한 동틀돌들이 천년을 셈하는 위상이 화려하다. 하늘 땅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 둥글고 네모난 큼직한 돌들이 조화롭다. 석단 위 세계는 부처님 나라 불국토, 아랫단은 인간세계를 의미한다. 예술로 매겨진 석축기법, 돌의 미학이 경이롭다. 하늘 땅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겸손의 미덕을 깨우친 축대다. 석단돌띠는 사선으로 처리되었다. 내리막길 비스듬한 위치를 따라서 인간 눈높이로 맞춤 설계되었다. 인간중심의 유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선호하는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영역이다. 석축 돌단에 기대 사진 찍는 관람객들의 미소가 석단주위로 환하다. 발밑을 살피면 흠칫 밟히는 돌띠가 길게 이어져 흙속에 묻혀 드러난다. 지붕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면 바닥이 패이지 않게 받히는 받침돌이다. 35대 경덕왕 시절 조성당시 박힌 신라적 밑돌이다. 자세히 살피면 선명한 돌 선이다. 처음 사찰을 축성할 때 그대로의 표시다. 알게 모르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뚜렷이 흔적을 품고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몇 뼘 옆으로 빗물에 패인 자욱이 바닥에 노출돼있다. 1973년 새로이 복원할 때 신라적설계법과 다르게 축조되었음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축성 당시 설계로 복원되려면 지붕위치가 더 솟구치거나 처마가 길게 나와야한다. 그래야만 낙숫물자리가 패이지 않고 옛 그 위치로 떨어지는 것이다. 낙숫물 패인 자국을 볼 때마다 몇 뼘의 비켜진 자리, 맞출 법도 했을 텐데...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복원할 당시 학문적 고증에 걸 맞는 최고의 복원기술을 총동원한 것은 당연지사다. 여의치 못한 사정으로 완벽하게 못 이룬 부분은 후손들이 언젠가는 실현할 것이다. 불국사 사찰 나무와 꽃 야생화 종류는 외래종을 포함해 223여개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 풀꽃나무 이름들을 대보면 대략 이러하다. 주목⦁소나무⦁금송⦁백송⦁반송⦁버드나무⦁전나무⦁개잎갈나무⦁함박꽃나무⦁갈참나무⦁서어나무⦁살구나무⦁매실나무⦁나무복사나무⦁감나무⦁고욤나무⦁때죽나무⦁붉가시나무⦁호랑가시나무⦁헛개나무⦁단풍나무⦁이팝나무⦁말채나무⦁작살나무⦁화살나무⦁보리자나무⦁은행나무⦁잣나무⦁회양목⦁향나무⦁느릅나무⦁동백나무⦁뽕나무⦁팽나무⦁노간자나무⦁벚나무⦁배롱나무⦁들메나무⦁쇠물푸레⦁목련⦁무궁화⦁개나리⦁작약⦁국화⦁모란⦁파초⦁개망초⦁비비추⦁옥잠화⦁으름덩굴⦁매발톱⦁범부채⦁아기똥풀⦁산괴불주머니⦁개여뀌⦁별꽃⦁박주가리 등등이다. 멍 때리듯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내려오다 보면 불이문(不二門)이다. 진리의 본체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경전으로 반듯한 불이문, 문 높이로 걸려 언뜻언뜻 비치는 노을이 산사의 저녁답을 물들인다. 새들의 지저귐 여과 없이 숲을 흔든다. 나뭇잎 단풍드는 야트막한 산모퉁이 산 빛이 고즈넉하다. 잘 치대진 완숙한 색감들로 물들여져 아름다워서 슬픈 계절 가을, 길의 어디쯤 내가 가고 당신이 가고 있는지, 쓸쓸한 뒷모습의 그대 어깨 다독이며 낯가림 없는 얼굴로 동행하는 가을이다. 불국사 안내 자원봉사 모임 발간 책 신행수첩(信行手帖) 적힌 글귀를 옮긴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나그네는 길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길을 떠난 나그네는 길에서 길을 볼 것이다. 그의 길은 결코 멀지 않다. 그 길은 영원한 길이기에... 그럼에도 ‘영원’ 속에는 ‘순간’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아, 윤회의 수레바퀴에 감겨져 있는 영원과 순간의 배리적(裵裏的) 질서. 그 끝없는 슬픔 속에서 여행자는 노래 부른다. 그의 슬픈 노래는 끝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 끝은 새로운 시작을 부른다. 그 끝없는 시작 속에 내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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