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사 당시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가며 금당지, 목탑지, 당간지주, 석조, 연화문 당간지주 순으로 그 흔적을 더듬어본다. 금당지에는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 기단석과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금당은 사찰에서 중심이 되는 불전이다. 사찰 안의 모든 건물들이 이 전각을 기준으로 배치된다. 대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을 말하는데,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금당은 대적광전, 비로전, 대광명전, 광명전 등으로 불린다.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금당은 극락전 또는 미타전, 무량수전으로 불린다. 질병을 치료해주고 번뇌를 없애주는 약사불은 약사전에 모시고,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은 미륵전 또는 용화전에 모신다. 대개 금당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앞쪽에는 탑, 그리고 범종이 있는 종루 등이 배치된다. 보문사지 금당 앞에는 동서 2기의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탑지는 금당지와 마찬가지로 주위의 논바닥보다 1-1.5m 정도 높다. 동탑지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나 서탑지에는 연화문이 새겨진 초석이 드러나 있고 중앙에는 목탑을 지탱했던 구멍이 뚫린 대형 초석이 남아 있다. 경주에서 볼 수 있는 목탑지로는 문무왕 때 창건된 사천왕사지와 효소왕 때 완성된 망덕사지가 있는데 모두 통일 초기이다. 그런데 이곳 보문사의 경우 정확한 창건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금당지의 초석과 서탑지에 남아 있는 심초석의 연화문 등을 고려하면 사천왕사와 망덕사가 세워진 시기보다 늦은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목탑을 건립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당시 보문사는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이 시기에 목탑을 세우게 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복고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음은 금당지의 초석과 기단의 처리에서도 느껴진다. 특히 서탑지의 심초석은 연화문으로 장식하여 석등대석처럼 보인다. 이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목탑 내부 구조의 예로서는 매우 드물다. 연화대석 아래 사리공의 존재는 황룡사 9층목탑 심초석의 사리공 위의 대석과 성격이 비슷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금당지로부터 서남서쪽으로 160여m 떨어진 위치에 있다. 두 개의 돌기둥이 남북으로 마주 서 있으며, 기둥 높이는 3.8m이고 두 기둥 사이의 간격은 64m이다. 기둥 사이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당간 받침은 없어졌다. 이 당간지주의 안쪽 면은 평면이고 나머지 3면은 아래쪽으로 잘록하고 그 위는 점차 가늘어진다. 상 · 중 · 하 3곳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구멍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남쪽 기둥은 구멍이 완전히 뚫려 있는데 북쪽 기둥은 반쯤만 뚫려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현재 북쪽 기둥의 윗부분이 부러졌으나 전체의 모습은 거대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이 소박하다. 기둥 정상부는 안쪽 면 상단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호선(弧線)을 그리면서 외부로 깎여지고, 정상부 이하는 사선을 그어 2cm쯤 아래로 내려왔다. 기둥 측면에는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이 4면의 모를 죽여서 돌을 다듬었다. 보문사지 석조는 금당터로부터 북쪽으로 85m 지점에 있다. 길이 273cm, 너비 90cm, 깊이 61cm의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돌로 돼 있는데 안팎으로는 아무런 장식 문양이 없이 단순하고 소박하다. 수조의 측벽 바닥 가장자리에 지름 7cm의 배수용 구멍이 1개가 뚫려 있다. 이 석조는 비교적 크고 조각 수법은 단순하나 장중하여 당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석조의 규모로 미루어 당시 보문사의 사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보문사지 대부분의 유물들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이 석조도 규모와 다듬은 솜씨로 보아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연화문 당간지주는 금당지로부터 북쪽으로 380m 떨어진 위치에 있다. 이 당간지주의 높이는 1.46m로, 아랫부분은 상당히 깊이 땅속에 묻혀 있어 간대(竿臺)나 기단의 유무와 같은 하부 구조는 확인할 수 없다. 위쪽 옆면에 여덟 잎의 연꽃 한 송이가 새겨져 있다. 연밥까지 보이는 연꽃으로 이와 같은 연꽃무늬를 새겨 장식한 당간지주는 이곳 외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당간지주의 연화문 주위로 총탄 자국이 있다. 누군가가 이 연화문을 표적으로 사격 연습을 한 듯하다. 이 당간지주는 보문사가 아닌 이곳에 있던 또 다른 사찰의 것으로 추정된다. 보문사지는 사적, 석조와 당간지주 및 연화문 당간지주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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