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최정례
외국에 나와서 제일 그리운 것은 국이다 국물을 떠먹으면서 멀리멀리 집으로 떠내려가고 싶은 것이다너무 추워서 양파 수프를 시켰는데 쟁반만 한 대접에 가득 수프가 나왔다 김도 나지 않으면서 뜨거워 혀를 데었다너무 짜고 느끼하고 되직해 먹을 수가 없었다몇 숟가락 못 뜨고 손들었다국이란 흘러가라고 있는 것이다후후 불며 먹는 동안 뜨거운 내 집으로 흘러가 몸을 맡기는 것이다그런데 내 집은 어디에 있나 내 집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왜 여기 나와 헤매고 있나여행이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맘에 드는 곳에 고여 있는 것이다거기 머물며 내 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 집이 어디 있는지 과연 내 집이 어디 있기는 있는 것인지 국을 그리워하며 떠내려가보는 것이다
-‘국’에서 출발한 집에 관한 명상
외국에서 있을 때, 특히나 명절을 보낼 때 생각나는 음식은 무엇인가? 시인은 ‘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뜨거운 국을 후후 불어가며 입 속 혀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삼켜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국을 먹으면 목에 걸린 음식도 기분좋게 내려가고, 트림도 나오고, 포만감도 일어난다. 바쁜 생활에 빨리 먹을 수 있고, 소화도 기분도 좋게 하는 음식. 국은 조상들의 세월과 지혜가 축적된 음식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데, 이 마음을 시인은 “국물을 떠먹으면서 멀리멀리/집으로 떠내려가고 싶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하, 음식은 입에서 식도와 위장을 거쳐 대장 아랫부분까지 내려가는데, 이 재밌는 발상은 어디서 온 걸까? 3연의 “후후 불며”에서 왔다는 걸 우리는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국을 먹으며 한 번 후후 불어보라. 그러면 물결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물결따라 떠내려간다는 거다.
국을 먹는다는 건 그 물결을 먹는다는 것. “후후 불며 먹는 동안 뜨거운 내 집으로/ 흘러가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국은 집으로 가는 길이자, 집이 된다. 그런데 나는 진정 집이 있기는 한 것인가? 여기서 시는 반전된다. 눈에 보이는 집(가정)에서 나는 안식하고 있는가? 그 집은 국처럼 뜨거운가? 그 집에서조차 서로 겉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물음은 독자인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문명의 속도에 브레이크도 걸지 못하면서 해매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만 해도 그런 것이다. “맘에 드는 곳에 고여 있는 것”이고, “거기 머물며 내 집을 생각하는 것이다” 느긋하게 시간을 죽이고 내 존재를 생각하다가 우리는 국처럼 집으로 흘러가야 할 것이다.
국을 먹으면 고향이 떠오른다.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을 “국이란 흘러가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이 시는 발상도 발상이지만 그 너머에 철학이 있고, 몸이 반응하는 힘이 들어 있다. 그 철학과 힘은 음식은 마음을 만든다는 것과,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상실하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