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Netflix 영화가 D.P.라 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지 10년이 지난 필자는 ‘뭐 그리 새로운 게 있을까’하는 선입견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6편의 시리즈물을 한꺼번에 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헐리웃 영화의 흥행공식인 ‘도망자’(탈영병)를 쫓는 ‘추적자’(DP/Deserter Pursuit)들의 얘기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원작자인 김보통 작가가 2014년 자신의 웹툰 을 영화에 맞게 각색하고, 화려한 배역에 한준희 감독의 연출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접하는 관객의 호응도는 ‘극과 극’인 반응을 보인다.영화에 부정적인 반응은 온통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19금 영화에다 군에 대한 선입견과 군의 병영문화를 희화화(戲畫化)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아내는 “누가 이 영화 보고 아들을 군대 보내겠는가?”라며 탄식하며 채 한편이 끝나기도 전에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와 반대로 대한민국 군대라는 특수 생활을 영화를 통해 ‘간접경험’하게 되고 이미 군 생활을 마친 예비역들의 경우는 흘러간 ‘젊은 날의 초상(肖像)’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필자의 첫 군 생활은 1984년 1월 20일,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기도 전 차가운 진해 옥포만에서 시작되었다.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군복에다 10문7(260mm)의 발사이즈로 자그마치 11문7(270mm)의 군화를 신고 단 한 번의 열외도 없이 훈련을 마쳤다. 가입교 훈련이 끝날 무렵 봉와직염에 걸려 절뚝일 수밖에 없었다.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입학식 날, 우리 엄마는 퉁퉁 부은 발목에 절뚝이는 막둥이 모습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다. 빈농의 막내로 태어난 필자로서 사관학교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도 자부심을 느낀다.
군이 필요해서 스스로 사관생도의 길을 선택한 나와는 달리 병사들의 경우 징집되어 군 복무를 하는 관계로 큰 입장차를 느낄 수 있다. 군의 간부를 길러내는 사관학교 생활을 한 나로서는 영화 속 병사들처럼 무지막지하게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고된 훈련과 만만치 않은 학점 이수, 무시로 쏟아지는 선배들의 ‘보고’(보고 한 건 해결하려면 최소 30분이 소요된다)에 평온한 날이 없었다. 실제로 생도생활이 힘들어 ‘빠삐용’처럼 탈영하는 선후배들도 많이 봤었다. 이처럼 고달픈 군인의 길이기에 고 3때 담임으로 진학지도를 해 주신 고 이종룡 선생님은 대뜸 사관학교를 지원하려는 나에게 “만약 ‘뼈를 묻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지원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고교 졸업식 날, 필자가 사관학교에 가입교 한 관계로 아버님이 졸업식에 대신 참석하셨다. 선생님은 졸업장과 우등상을 대신 수여하시며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님은 가끔 그때 졸업식의 감격을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후 군 생활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은사님의 조언과 칭찬을 떠올리며 엄혹한 세월들을 잘 견뎌냈다고 생각한다.
극중 주인공의 누나가 “(괴롭힘 당할 때) 왜 보고만 있었느냐”고 묻는 대사가 나온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군내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침묵하면 불합리한 것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실 폭력은 가정에서부터 유래하게 된다. 후임병사 길들이기, 병영생활의 저변 문제들이 심해지면서 탈영병이 생겨나고, 이 때 DP조가 출동한다. 영화 속 주인공 안준호 이병(정해인 분)도 군내 폭력을 목도하면서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에 신음하는 어머니를 지켜봐야만 한 데 대한 회한을 느끼곤 한다.
필자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긍정의 힘을 말하고 싶다. 즉 영화는 폭력이라는 이슈를 우리사회 전반에 던져줌으로써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다. 이미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군 문화 개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급기야 국방부 대변인까지 나와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사회지도층은 군대 가기를 꺼리고 군내 폭력은 진행형이다. 영화 속 어느 탈영병이 내뱉은 말처럼 ‘군대 오지 않았으면 탈영하지 않았을’ 이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더한다.
언제쯤 DP영화 이전 정문 위병소를 들어가기 싫어하는 표정의 군 모습에서 불의를 보면 침묵하지 않는 다수가 모여 있는 활기찬 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이 D.P.영화의 시리즈가 끝날 때쯤이면 누구나 가고 싶은 군대, 사회고위층이 솔선하여 군에 들어가는 그래서 이른바 ‘Nobles Oblige’가 실현되는 변화된 모습들을 그려 본다.한부식 씨는 경주고등학교와 해군사관학교 졸업. 방위사업청에서 해군 중령을 끝으로 28년간의 군 생활을 마쳤다. 제대 이후 자비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뚤루즈 1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했다. 현재 진주혁신도시 공공기관에 근무 중이다.
글=한부식 / 진주혁신도시 공공기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