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우리의 여행과 이동을 배경으로 하는 관광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넘어선다. 당연히 며칠 앞 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도 코로나의 영향을 비껴나기 어렵다. 핵가족 시대라 예전처럼 모일만한 대가족도 없지만 모임인원의 제한으로 가까운 친척조차 방문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선 이 코로나 상황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민족이동으로 붐비던 추석 귀성길 풍경이 기억에도 가뭇한 일이 되었다. 지금이야 코로나가 아니어도 실시간 교통 정보기술이 좋아지고 역귀성도 많아져서 명절날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대략 80년대를 지나온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서울에서 경주와 비슷한 거리의 고향을 뒀던 사람은 새벽 일찍 출발하여 고향에 도착하면 늦은 밤이 일쑤였고 새벽녘 또는 차례가 지난 시간에 도착했던 경험이 흔했다. 이맘때의 귀성길은 고행길이고 순례의 길이었다.
추석날 고향 가는 것은 일가친척을 만나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러가는 것이 일차 목적이다. 명절날 우선 부모님과 일가친지를 만나 정다운 안부를 묻고 동기들과 정을 나눈다. 고향을 찾는 길, 그 이면에는 나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렇듯 고향을 찾는 일은 어쩌면 르네상스시기에 유럽인들이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찾아 떠나던 모습과 닮았다. 근원을 찾아 나선다는 측면에선 어쩌면 관광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순례관광에 비견할 수 있겠다. 유럽의 귀족이나 문호들이 그들의 원류를 찾아 여행의 붐을 일으켰었던 시기를 그랜드투어(대여행) 시대로 지칭한다. 신앙행위의 일환으로 심신의 갱생과 신령의 체험을 위해 종교상의 성지나 신령한 장소를 찾아나서는 여행이 성지순례라면 그랜드 투어는 나를 찾아 나서는 행위였다.
핵가족화와 경제적 풍요로 수려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문화유산을 찾는 일이 어렵던 시절 추석날 고향 방문보다 쉬워졌다. 그만큼 여가생활이나 여행의 목적지로서 문화유산의 비중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즈음에서 세계문화유산을 생각해보게 된다. 유네스코에서도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다고 인정되는 유산을 세계문화유산 일람표에 지정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 합천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시작으로 최근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까지 세계유산이 15개이고 북한의 2개까지 포함하면 한반도에는 17개의 세계유산이 등록 되어 있다. 세계유산으로 가는 길의 중간단계라 할 수 있는 잠정목록이 12곳이 있고 장차 등재시도 중인 세계유산만 30개 정도가 있다.
마침 늦더위가 한풀 꺾이던 8월말,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을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축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 유적지구의 한 곳이고 공주 부여의 유적지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축전이다. 문화재청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세계문화유산을 향유하고 유산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한 축제 사업이기도 하다.
올 가을에는 경북안동과 수원 화성, 제주도 용암동굴이 차례대로 이들 세계문화유산축전을 하게 된다. 작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가 안동 영주와 함께 이 사업에 참여했다. 코로나로 어렵긴 하지만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경주인만큼 이 사업에 올 해도 동참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한국의 핫한 모습을 보기위해 강남과 삼성동에 간다. 그런 한편 인사동과 용인민속촌, 경복궁도 방문해 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 방문을 통해 한국의 속살, 문화유산의 기능과 진정성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경주를 찾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우리가 고향을 찾아 우리의 뿌리와 진정성을 확인하듯 경주를 찾아 대한민국의 뿌리와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 근원적 문화유산의 보고로 경주가 우리국민과 세계인에게 더 깊숙이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추석을 맞아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