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고도에 100살 자리 식당조차 하나 없다’ 라는 필자의 지난 번 칼럼은 사실 ‘아쉬움에 대한 토로’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아쉬움에 대한 토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공감적 이해’를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명확하려면 사람들로 부터 확장된 시각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가치의 실종 – 새것이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낡은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그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도 이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영국 사람들이 발 빠르게 문명의 발전에 남들보다 많은 업적을 이루어 놓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온고지신’이라는 것을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여러 잡지에 반복하여 적어 올렸다. 물론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몫’이 온전히 당사자의 일이라는 항변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가치’에 대한 ‘총체적 이해’는 이 불편함이 ‘자랑과 자존심’의 영역으로 확장이 된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천년고도가 내 고향이라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의미가 있다. 장인정신의 부재-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선 타고난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격어야 하고 더디게 이루어 가느라 인내와 끈기 또한 필요 할 것이다. 한국 음식은 여전히 ‘손끝에서 완성되는 맛’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 손끝에서 완성되는 맛은 세월이 녹아 몇 대를 거쳐서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와 딸들에게 전수된 것들이 많다. 굳이 종가집 음식이 아니더라도 그 동네, 그 지역, 그 집안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맛’이 있다. 누군가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결코 안 되는 것들이 바로 음식이다. 사농공상에 대한 편견과 편협함 - 지난 호 칼럼을 본 후배 한 명이 “형님 경주에서 100년 식당이 없는 것은 사농공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나치게 강해서 그렇지요” 라고 쪽지를 보내 왔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봤다. 아직도 그런가? 새천년이 시작된 지 벌써 2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말이다. 폼 나는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와 식당을 하고 한 때 잘나가던 외교관이 우동집을 하고 근사한 유학파 아티스트가 파스타를 만들고 국회의원 하던 사람이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을 닦는 시대다. 그 후배의 일갈이 맞는 말이라면 나와 상관이 없는 고향의 일이지만 100년 된 식당이 없는 이유로선 너무 참담할한 것이다. 요리사에 대한 온당한 태도 - 영국에 처음 왔을 때, 방송 및 여러가지 공중파 매체와 각종 언론의 앞 페이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많은 요리사들을 보면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강산이 거의 세 번 바뀌기 전의 일이었으니 필자에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이유가 ‘음식문화가 척박한 영국’이 자신들의 취약점을 극복해가는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연구소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여러 역사적 고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영국은 아직도 왕이 건제하고 귀족들이 활개 치는 나라이다. 21세기에도 봉건시대의 권력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 섬나라 사람들이 보여주는 요리사에 대한 유연한 시각은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오래된 도시 경주에서 우리가 보여주었던 요리사에 대한 그간의 태도는 100년 식당이 왜 없는가에 대한 이유가 아닐까. 나라와 지방자치의 후원과 협조 - 한국에서 식당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세업자들이다. 물론 오늘날 대기업이 운영하는 외식업체도 많고 개인이 운영하다가 기업형 식당이 된 곳도 많다. 그러나 식당업은 고정비가 많이 발생하고 외부의 환경에 좌우되는 취악함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살아남아야 100년 식당이 된다. 영국에서 오래된 펍들이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널려 있는 이유는 예전부터 국가에서 많은 후원들을 해 주었고 지금도 어려울 때 후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어렵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 벗고 나서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간간히 상상해 본다. 천년고도 경주에 걸맞은 위상이라면 적어도 10개 정도의 100년 식당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상상 말이다. 사실 마음 같다면 한 100개 정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게 정말 실현 가능한 ‘상상’이 아니라 허공에 날리는 ‘공상’이 될 듯해서 욕심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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