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지위는 불과 한 세기만에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해방 전후 대가족 제도와 전통적 유교관습이 지배하던 농경사회에서는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지위는 막강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곧 법이고 진리였다. 감히 거역했다가는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친족들, 동네까지 소문 나 에게 멸시 당하는 풍파를 감수해야 했다.
80년대 이전, 산업사회까지 아버지는 그런대로 권위가 인정됐다. 집안의 중심으로서, 가장으로서, 집안을 지탱하는 경제주체로서 어느 하나 꿀릴 게 없었다. 연령으로 치면 대체적으로 지금의 60대 이상까지는 이 그룹에 속하는, 남자로서는 마지막 권위를 누린 세대다.
90년대 아버지들은 문자 그대로 ‘낀’ 형편이다. 지금의 50대는 대체적으로 이 그룹에 속할 것이다. 어릴 때 보고 자란 것은 전통 농경 사회, 대가족의 풍모가 엄연히 존재했지만 가정을 이룰 때쯤 완전히 핵가족으로 바뀌었고 한창 여성의 권위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이 시대 아버지들은 부모와 형제, 집안과의 유대에도 신경 써야 하고 아내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대부분 노동의 대가가 통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시스템 속에서 기능적으로는 ‘돈 벌어 주는 남자’로 전락한 채 거꾸로 용돈을 타 쓰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이 시기 아버지들은 심리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관습에 빠져있고 현실적으로는 급속한 변화로 인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면서 가정 내에서 지위를 상당부분 상실하기 시작했다.
2000년 대 이후, 40대 이하의 아버지들은 윗세대들에 비해 훨씬 자유로워졌다. 대가족 제도 자체를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아주 어린 시절 겪은 일이니 가족만 잘 챙기면 되는 아버지가 됐다. 어릴 때부터 양성동등의 인식을 꾸준히 교육 받고 자란 덕분에 성별 간 스트레스도 훨씬 덜 하다. 기존의 연대 의식들이 줄어들고 급격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띤 세대답게 무엇을 하건 자유롭다.
김찬형 씨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가족들을 위해 가끔씩 꾸미는 ‘아빠의 밥상’은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일상이고 행복한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즐겁게 하는 일이니 밥상에 윤기가 흐른다. 지금까지 많은 밥상을 올리면서 한식, 양식은 물론 별의별 음식을 다 만들어 올린다.
밥상 뿐 아니라 간식, 야식, 디저트까지 어지간한 요리사 저리 가라다. 물론 정기적이다 싶은 외식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이 즐비한 음식들만 봐도 40대 후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창 소통 많은 가장으로서 김찬형 씨가 꾸려나가는 행복이 보이고도 남는다. 50대 이상의 낀 세대가 한 번쯤 유심히 살펴보고 밴치마킹하기 딱 좋은 아빠의 밥상이고 자신의 이름 ‘형’을 딴 ‘형아’의 생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