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의 복원으로 경주에 새로운 문화 관광지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요즘 경주에 오면서 도시가 많이 화려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다양한 조명이 경주 밤거리를 빛나게 하지만 여행에서 불빛과 음식을 제외하고 어떤 문화적 상상력이 있는 거리인지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신라 수도였던 경주는 분지의 이점을 활용해서 외성을 쌓지 않고 산성을 쌓았다. 명활산성을 근거지로 수 많은 왜구와 싸움이 있었고 신라의 민초들의 권력투쟁이 있었다. 반면 경주읍성은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했다. 국가문화유산 포털의 설명에 의하면 경주읍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우왕 때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성을 빼앗겼을 때 이장손이 만든 비격진천뢰를 사용해 다시 찾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대한제국 말 의병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남한산성까지 진격했다가 후퇴하던 의병장 김하락 장군이 경주읍성을 점령했던 독립운동사도 경주 읍성에 녹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읍성은 동서남북에 향일문, 망미문, 징례문, 공진문의 4대문이 있어 이들 문을 통해 출입했는데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있는 성덕대왕 신종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부분 성벽이 헐려나가고 동벽 약 50m 정도만 옛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2009년 ‘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을 세우고 2018년 동성벽(324m), 동문(향일문) 복원 및 탐방로 정비를 완료했고 앞으로 주변의 슬럼화된 주택과 상가를 매입해 경관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대와 근대의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관광도시를 가꾸려는 경주시의 계획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드웨어를 잘 정비하고 멋진 조명을 넣는 것이 문화재 복원의 전부라 생각하지 않는다. 경주읍성이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고 항일의병들의 싸움터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격진천뢰라는 첨단 과학 무기로 왜병을 무찌르고 김하락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경주읍성을 되찾았던 역사적 장소라는 것을 관심 있는 소수만 알아서는 안 된다. 전국 주요 도시에는 읍성이니 산성들이 많지만 경주읍성이 그런 여러 성 중 하나가 아니라 신라, 고려, 조선, 대한제국, 식민지시대, 근현대를 이어온 우리 역사의 터전이자 고대로부터 경주에서 살아온 모든 이의 희노애락이 공존한 장소로 되살아나면 어떨까? 이런 단상과 함께 스코틀랜드 작은 성인 고든성에서 열리는 성(城Castle) 영화제를 떠올려본다. 성의 잔디밭에서 자연스럽게 앉아서 영화를 보듯 경주읍성 벽에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봐도 좋고 이를 확장해 경주와 어울리는 영화제도 만들면 어떨까? 거창한 영화제 말고 힘 빼고 편안하게 참가할 독립영화제 같은 것 말이다. 잘 운용하면 읍성 복원만큼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SNS를 동원하고 참가비는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된다. 성벽을 앞에 두고 편안히 앉아 영화를 감상하면서 치맥을 먹어도 되고 경주빵을 먹어도 된다. 마침 읍성 근처에는 계림초등학교가 있어 이를 기지로 활용해도 될 것이다. 진정성과 개최의도만 확인된다면 어떤 국제적인 영화제보다 알찬 영화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판타지 코미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Night at the Museum/2006)’처럼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고 기억하는 장소로 만들면 어떨까? 이 영화는 뉴욕 맨해튼에 실존하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이 배경이며 크로아티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밀란 트렌크가 그린 동명의 그림책이 원작이다. 마침 남한산성과 경주읍성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웹툰 만화도 있다. 경주출신 이현세 화백과 이상훈 작가가 함께 만든 ‘바스락’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면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멋진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의 각 분야에서 억눌린 욕구들이 분출할 것인 바 상상력을 가지고 미리 준비해 둔 자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누가 먼저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고 얼마나 홍보를 잘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자원을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정신적 수도인 경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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