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영화를 만나지 못한 것은 마흔 중반이 되면서 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적으로 가장 여유 있었던 20대 중반, 대학 복학생 시절. 다소 경제상황이 궁핍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늘 여유 있고 풍요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던 그때 만난 영화 2편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두 편 모두 한 사람만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이며 눈물 없이 보는 것이 불가능한 영화였다.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OST는 거의 2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귓가에 남아있는 명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영화는 “왜 날 사랑하니?”라는 여자 주인공의 물음에 “당신이니까요!”라고 대답한 남자 주인공의 명대사로 기억되는 ‘국화꽃 향기(2003)’다.
서인하(박해일)는 지하철에서 당찬 여대생 민희재(장진영)의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게 되고 우연히 가입하게 된 동아리에서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모습에 반한 인하는 희재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쓰지만 희재는 그것을 거부하고 대학 선배와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해 선배와 선배의 부모까지 한순간에 잃은 희재는 스스로를 자신의 테두리에 가두고 세상에 나오지 않으려 한다. 인하는 라디오PD로 활동하며 자기가 연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익명으로 자신의 사연을 올리며 희재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띄운다. 인하의 동아리 선배이자 희재의 대학동기인 영란이 인하의 소식과 라디오 사연을 희재에게 들려준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이룬 사랑이지만 희재는 배속의 딸 하나를 재왕절개로 조기출산하며 세상을 떠난다.
그 안타까운 여운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이 영화를 본 후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를 고 장진영 씨라고 말할 정도다. 우연하게도 장진영 씨는 영화처럼 위암으로 우리 곁을 떠나 장진영 씨의 마지막 소식을 들은 나는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두 번째 영화는 냉정한 척 하지만 사실은 따듯한 여인과의 약속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아온 남자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 ‘냉정과 열정 사이(2001)’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작품 복원사 일을 하는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는 헤어진 여자친구 아오이(천후이린)와의 오래 전 약속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아오이도 이탈리아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안 준세이는 매우 중요한 복원일을 미루고 아오이를 만나기 위해 밀라노로 향한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에서 ‘냉정’으로 묘사되는 아오이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재력가 마빈이 있어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 ‘열정’의 대명사 준세이는 우연히 친구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아오이와 헤어지게 사주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을 냉대한 아오이의 모습이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라 단정하고 오래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인들의 성지 ‘두우모 성당 전망대’로 오른다. 냉정한 척 살아온 아오이 또한 그녀 자신 준세이와의 약속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30번째 생일날 그들이 했던 약속대로 두우모 성당으로 향한다. 약간의 이야기가 더 있지만 둘은 마침내 사랑을 이룬다.
이 두 영화는 영화에 못지 않게 OST가 심금을 울린다. ‘국화꽃 향기’는 가수 성시경의 ‘희재’라는 OST가 영화와 어우러져 스토리로 말랑해진 심장에 일격을 가해 터뜨려버리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익숙한 멜로디인 ‘요시마타 료’의 음악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영화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두 영화는 사랑에 조건이나 제약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준다. 심지어 이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이 느끼는 사랑에는 배려나 이해조차도 필요 없는, 다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뿐이다. 인하나 준세이를 보면 그 단순하고 간결한 마음이 가장 큰 사랑법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하는 남자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남자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두 영화를 본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될 것이며 앞으로 내 옆에 있을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유는 물론 하나다. ‘당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