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살문 섬세하고 촘촘한 비로전 한 귀퉁이, 기품을 잃지 않은 부도가 엄첩다. 1740년 승려 활암이 쓴 『불국사고금창기』 ‘광학부도’라 일컬어진 보물 제61호다. 품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담한 몸피로 이국땅 여러 곳으로 끌려 다녔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설득으로 우리 땅에 돌아왔다.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 문인수 시인 ‘하관’ 시를 묘비명처럼 덮고 처연히 사리함을 돌아서나온다. 부처님제자를 모신 전각 나한전(羅漢殿) 뒷담 쪽으로 발길을 튼다. 관람객들이 쌓은 땅바닥 깔린 자잘한 돌탑 무더기들이 수두룩하다. 흙 담 위 기왓장에도 빼곡하게 얹힌 돌탑 행렬이다. 동심의 해맑은 미소로 쪼그려서 어른도 아이도 쌓는 돌탑정원이 소담스럽다. 【삼국유사】, 『고금창기』에 오백나한이 불국사 경내에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지금의 나한전 위치는 1973년도에 새로이 지은 건물이다. 법당 안에 모셔진 나한불상들은 조선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후불탱화에 그려진 궁중예복을 입은 보살들 모습에서 그 예가 보여 진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자이다. 오백나한전, 응진전, 응공전, 현판을 쓰기도 한다. 불국사나한전은 16나한을 모신 법당이다. 성불의 합장을 드리고 앞문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법화전지로 추정하는 터다. 세월 얹힌 주춧돌들이 둥글납작 천년을 메우고 간다. 봄이면 산수유, 가을엔 은행나무 풍치를 더해주는 빈터에 대들보를 세워본다. 모서리를 틀어 따라가면 불국사 발굴당시 출토된 유물을 한 곳에 모아둔 석조물전시공간이다. 어처구니없는 맷돌이며, 천년화장실문화를 유추해보는 소변기 대변기 등 부춛돌의 쓰임새가 옛 풍속을 거슬러 간다. 야외공간에 널브러진 전래의 자취들을 퍼즐게임처럼 끼워 맞춰보지만 까마득하다. 마당 가운데 사시사철 철철 넘쳐흐르는 신라시대수조에 생수 받아 물맛 달게 들이킨다. 쉼의 자국으로 발걸음 한 몸짓들을 가만히 놓아보기 알맞은 공간이다. 눈간데 없이 평화로운 구석에 싸여 한숨 돌리는 맥 놀림이 지척 모르게 편안하다. 숨은 듯 외진 길섶으로 감춰진 불국사선원을 먼발치서 살펴본다. 통제구역이다. 우거진 나무수풀에 가려 기와지붕 꼭대기만 보일 듯 말 듯 스친다. 백운스님⦁이판스님들이 여름 하안거⦁겨울 동안거 3개월씩 참선수행(參禪修行)하는 도량이다. 조실스님이 거하는 사찰이다. 통도사 영축총림, 해인사 해인총림, 송광사 조계총림은 방장스님이 거한다. 외따로 머물렀던 공간을 뒤로하고 범종각에 닿는다. 절의 종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1층 구조일 땐 범종각, 2층 구조일 땐 범종루라 칭한다. 신라시대 종은 아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을 본받아 축소 조성한 종이다. 범종⦁목어⦁운판⦁법고 사물(四物) 중 범종(梵鐘)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종을 울리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울린다. 불국사 법고(法鼓)는 거북이 등에 실려 간다. 북채는 마음 심(心)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친다. 땅위 중생들의 해탈과 영생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잘 때도 눈을 감지 않아 부지런히 수행의 몫을 상징하는 나무 물고기 형태의 목어(木魚)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물속의 생물을 교화함이다.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모양 운판(雲版)은 하늘 위를 날고 떠다니는 것들의 안식을 구원한다. 범종각 앞 기와건물의 나무계단을 밟고 지하를 내려가면 전통찻집이다. 녹차 우려 음미하는 사이 수첩을 꺼내 불공드리듯 천년고찰 향기를 적는다. 차향 머금은 입가심으로 불국사 큰 마당으로 쑤욱 나아가면 우뚝한 당간지주가 손짓한다.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 돌기둥지주다. 절의 행사를 알리는 장대인데 제자리를 잃고 제 짝도 놓친 채 옮겨져 있다. 시대의 변천에 큰 차이 없이 조각수법이 대등한 당간지주는, 기단의 형태나 겉면 턱진 테두리 한복판 도드라진 종선(縱線)의 문양대와 받침 등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한다. 주위를 살피면 건너편 큼직한 장방형 수조가 대견스럽다. 사람의 힘으로 여닫기 무거운 덮개가 놀랍다. 기운이 센 남정네 여럿이 붙어도 뚜껑돌 사용이 버거웠을 터인데... 어떻게 열고 닫았을까 갸우뚱 궁금해지는 물음이다. 불국사경내엔 신라시대 돌 수조가 3개 있다. 물을 담아 두는 물통이다. 불국사 박물관뜰에 옮겨진 보물 제1523호 수조는 장방형 귀퉁이를 모남 없이 가다듬었다. 꽃으로 화한 몸체의 겉면을 돌띠를 둘렀다. 띠 안에 안상을 새겨 넣고 수조안 바닥과 사면에 연꽃을 돋을새김 하였다. 물을 채우면 빛의 굴절에 반사되어 연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이다. 소품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고 섬세한 숨결을 불어넣은 통일신라 석공예의 진수를 곳곳에서 엿본다. 안기는 자리마다 연꽃을 피워 문 불국사 천년가람은 감탄사의 도량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된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룩한 예술문화기에 장엄 찬란하게 꽃피웠으리. 관람객 몰리는 불국사 박물관은 불기2562년(2018) 11월 개관식을 거행했다. 불국사의 역사. 석가탑 사리장엄(국보 제126호), 불상과 불화, 학산 남석환 선생 기증유물 등 천년보고 산실이다. 360도 회전하며 들여다보는 디지털 확대 돋보기 앞에서 기(氣)를 다해 감상하게 된다. 귀중한 천년유물 역사흔적에 예술의 혼을 느끼는 감동으로 전율한다. 그리고 석가탑 건립과 보수, 사리장엄 과정을 영상화한 상영실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 인사말씀이다. “불교의 이해와 불교문화의 가치와 정신이 승화 구현된 문화재를 통해 우리문화, 우리 불교문화의 소중함과 위상을 다시금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초가을바람이 산문(山門)을 내려가라 등을 떠민다. 덜컥 쓸쓸함이 어깨를 누른다. 저녁예불 드리는 사물들이 저물녘 풍경으로 정중히 내려앉는다. 나무의 가지들이 고단함을 풀 듯 푸른 잎 손바닥 폈다 오므렸다 몸뚱일 맡긴다. 하루를 접는 절 마당이 텅 비어 적막하다. 누가 저 무심의 침묵을 노래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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