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작곡한 음악가는 누구일까? 모차르트는 35년이라는 짧은 생애동안 600곡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한편, 오늘날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바흐는 천 여곡을 남겼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흐가 정답일까? 아니다. 정답은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1681-1767)이다.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텔레만의 작품은 알려진 곡만 무려 3천여곡이다. 당연히 기네스북의 한 줄을 ‘텔레만’이라는 이름이 차지하고 있다.
텔레만은 음악의 아버지(바흐)와 어머니(헨델)와 동시대를 살았다. 바흐와 헨델이 1685년생이니까 텔레만이 4년 선배다. 그의 작품은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오페라, 성악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건반악기용 소품, 모음곡, 협주곡 등등 잡식성이다. 이쯤 되면,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모차르트가 떠오른다. 다재다능했던 모차르트도 손을 대지 않은 장르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텔레만의 음악은 모차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따라서 모차르트에게 음악의 아버지는 텔레만이었다.
텔레만은 39세(1720년)에 함부르크의 음악감독(칸토르:Kantor)이 된다. 그리고 죽을 때(1767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함부르크의 음악을 책임졌다. 함부르크에는 다섯 개의 큰 교회가 있는데, 그는 이들 교회를 위해 매주 두 편의 칸타타를 만들어야 했다. 그의 작품 3천 여곡 중 칸타타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이유이다. 칸타타는 약식 오페라라고 보면 된다. 보통 무대나 의상에 드는 비용이 생략된다.
1723년 라이프치히의 음악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텔레만이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일부러 지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라이프치히의 새 음악감독이 된 사람이 바로 바흐다. 바흐도 텔레만처럼 죽을 때까지, 거의 30년을 라이프치히의 칸토르로 봉직한다.
텔레만과 바흐는 이렇게 두 도시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바로크 후기에 음악의 중심을 독일로 가져왔다. 두 사람의 친분관계는 꽤 상당했던 걸로 알려졌다. 일례로 텔레만은 바흐의 차남인 C.P.E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1714-1788)의 대부(代父)가 되었다. 가운데 이름 ‘필립’은 바로 텔레만의 중간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더군다나 C.P.E바흐는 텔레만이 죽자 함부르크의 칸토르 자리를 승계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는 텔레만이 바흐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이었다. 텔레만을 승계한 바흐의 차남, C.P.E바흐도 아버지 바흐보다는 지명도가 더 높았다. 하지만 인기는 부질없는 것이다. 18세기 말 고전파에서 19세기에 낭만파에 이르면서 대중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음악을 요구했다. 바로크 귀족을 위한 텔레만의 음악은 대중에게서 점점 잊혀져갔다. 오히려 C.P.E바흐가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 바흐의 작품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사후 100년이 지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