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1965)는 ‘까이에 뒤 시네마’등을 참조한 세계 100대 명화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겐 최고의 영화이다. 초등학교 시절, 충무로 대한극장에 반년 가까이 걸려있었던 이 영화는 청년이 되어 제대로 접했는데 당시 감성적이었던 나로 하여금 혁명 속에서 이리저리 내 몰린 인물들을 통해 삶의 방향에 대해 적지 않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직접 경험한 러시아혁명의 야만성과 비인간성을 고발한 소설 ‘닥터 지바고’를 영국의 대작주의 감독 데이비드 린이 동명으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밀회’, ‘여정’,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라이안의 딸’, ‘인도로 가는 길’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두 남자를 내세워 격동기 속 인간군상을 두 부류로 나누는데, 그들은 혁명이라는 현실에 직접 참여하여 세상을 개선시키려는 현실 참여자들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일에 충실하면 이 사회는 개선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에 대한 방관자 입장의 사람들이다. 전자는 법학도 파샤이고 후자는 의사 지바고인데 그 두 남자 사이를 매개하는 라라(Lara)라는 여인이 있다. 영화에서는 이 라라가 가장 중심에 있으며 그 배역은 아직도 올드팬들이 그리워하는 명연기의 쥴리 크리스티다. 나 역시 ‘닥터 지바고’하면 우선 라라가 전선이나 바리끼노에서 지바고와 헤어질 때의 그 연기를 떠올리고 지금도 가슴을 저민다. 혁명의 중심으로 뛰어 든 빠샤와 달리 지바고는 혁명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삶 자체를 사랑하기에 자신에게 강요되는 세상의 흐름에 따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며 첨예하게 대립했던 계급투쟁은 라라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대화 속에서 속절없이 사라진다. 작품의 배경은 1차 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으로 그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의 인간적 고뇌를 표현한다. 의사 지바고는 마르크시즘에 동하지 않고 현실 참여를 거부한다. 그는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며 개인의 존엄을 지키려고 애쓰는데 그에게는 거짓된 바탕으로 비롯되는 사회제도와 정치적 이용은 조악한 것으로 전혀 이해 불가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희생시킨 거대한 혁명 속에서 한 여인을 사랑했던 한 의사이자 시인의 이야기는 삶을 향한 행복의 기회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모습이기도 하다. 파스테르나크는 이 작품으로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지만 작품이 사회주의 혁명에 반한다는 이유로 추방당할 형편에 놓이자 자의반 타의반 수상을 포기한다. 부모 없이 입양되어 의사로 자란 지바고는 자신의 약혼식 파티에서 자신을 능욕하던 남자에게 총을 쏜 라라라는 여인을 보게 된다. 후에 의사가 된 지바고는 결혼을 하고, 라라는 혁명가 파샤와 결혼하지만 1차 대전이 일어나 전장에서 지바고와 라라는 의사와 간호사로 해후한다. 그 후 1917년 러시아혁명 뒤 지식인이라 숙청대상이 된 지바고는 가족과 함께 우랄산맥 오지 바리끼노로 숨어드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라라와 재회한다. 아내와 라라 사이를 왕래하던 지바고는 어느 날 빨치산에 잡혀 오랫동안 끌려 다니다가 탈출하여 돌아오나 가족은 파리로 떠나고 남아 있던 라라를 만나 바리끼노에서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라라는 혁명가였던 남편의 전력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으로 피신을 가게 되면서 지바고와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세월이 흐른 뒤 노쇠한 지바고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전차를 타고가다 거리를 걸어가는 라라를 우연히 발견하고 황급히 따라가다 심장마비로 절명하고 만다. 이 영화는 자유롭지 않은 세상의 굴레를 뛰어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젊었을 때엔 내게 현실참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 그 후엔 이 세상살이에서 어떤 삶의 모습이 보다 더 인간적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여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내겐 최고의 영화로 남아 있다. 이 영화는 1966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각본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하지만 그랑프리인 작품상을 ‘사운드 오브 뮤직’에 빼앗긴다. 오스카연기상에서 이 작품의 쥴리 크리스티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쥴리 앤드류스가 경쟁을 했지만 의외로 영화 ‘달링’에서 열연한 또 하나의 쥴리 크리스티가 수상했다. 원작은 이데올로기가 중심이지만 영화는 라라를 둘러싼 사랑이 주된 흐름이 되어 지금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강대춘 : 전 경주고등학교 교장 / 수봉교육재단 재단 감사 / 수필가 / 옥돌문학동인회 회원, 서라벌 신문 백두대간 종주기 연재 / 월간경주 ‘강대춘의 영화이야기’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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