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러 동네의 골목을 걸어보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경주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다양한 형태로 시간의 지층이 지금도 쌓여가고 있고 내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16일 찾은 ‘앞사정동’도 그랬다. 시민에게는 옛 경주시장관사가 있는 동네, 경주공고, 신라초등학교, 경주시여성복지회관이 있던 동네로 알려져 있었다. 그 동네를 천천히 걸으니 도심 속 알짜배기 명품 한옥동네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속살을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됐는데 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황리단길 인접 동네라는 정도로 알고는 있었지만 깜짝 놀랄만한 볼륨의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세등등한 한옥주택들은 분명 세월이 갈수록 더욱 명품이 될 것이고 흔치 않은 경주의 풍광으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규모가 큰 한옥들과 함께 이 동네 원형을 간직한 다소 작고 허름한 한옥들과도 공존하고 있어 시간의 지층이 짐작돼 더욱 정감이 가는 동네기도 했다. 대로변(첨성로)에 위치해 자동차로 ‘휙’ 지나치기 쉬운 이 동네를 재발견한 기쁨은 매우 컸다. -부드럽고 고운 모래가 많다고 해 ‘沙正’...경주서 가장 큰 기와집이 들어선 것도 이 동네가 처음 사정(沙正)은 맑은 물이 흐르는 문천(汶川,蚊川)가에 있는 마을로 부드럽고 고운 모래가 많다고 해 ‘沙正’이라 일컬었다. 사정동은 조선말기에 사정, 앞사정, 뒷사정, 국당을 통틀어 ‘사정(沙正)’으로 불렀다. 1973년 법정동인 사정동과 탑동을 묶어 행정동인 탑정동으로 운영하고 1975년 법정동인 사정동, 탑동, 율동(1, 2, 4리), 배동을 묶어 행정동인 탑정동으로 운영했으며 1986년 법정동인 사정동, 탑동, 율동을 묶어 행정동인 탑정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동네는 ‘앞사정’에 해당한다. 사정의 앞쪽에 있는 마을로 전사정이라고도 했다. 앞사정으로 불렸던 이 동네의 도로명은 ‘첨성로’와 ‘금성로’였다.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도로가 휘감고 있는 서천변 안쪽 동네기도 하고 경주공업고등학교 가는 도로 안쪽 동네다. 동네 맞은편에는 국당마을의 들판이 너르게 펼쳐져있기도 하다. 골목에서 우연하게 만난 한 주민은 “‘앞사정’인 이 마을은 30~40여 년 전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예전 마을이 있었고 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고속,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르는 큰 도로가 나면서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지면서 구획정리 및 택지정리를 했어요. 당시에는 초가집과 밭이 많은 동네였고 이들을 구획정리하면서 큰 기와집들이 들어섰던 것 같아요. 경주시장 관사도 이때 들어섰다고 들었습니다. 경주서 가장 큰 기와집이 들어선 것도 이곳이 처음이었어요” 라고 했다. -‘앞사정’...경주시 방문한 외국인 사절 연회 열리던 옛 경주시장 관사 있던 동네 첨성로에서 웅장하지만 단아한 형태의 한옥 한 채를 만난다. 1990년 12월 건축된 예전 경주시장 관사는 첨성로 39번길에 위치한다. 대지 1371m²(414평), 연면적 291.24m²(88평)의 1층 한옥주택으로 공관, 연회장, 관리사, 차고 등이 들어서 있었다. 옛 시장관사는 한옥이 많이 들어선 이곳 사정동 일원에 한옥으로 세워졌다. 이곳 경주시장 관사에서는 지난 200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시장의 주거 뿐 만 아니라 부속으로 딸린 연회장에서는 수시로 이곳에서 경주시를 방문한 외국인 사절을 위한 연회가 열리고 비상시나 공휴일에는 시청간부들의 비상회의도 열렸었다고 한다. 이 관사는 지난 2019년 ‘경주시국제교류문화관’으로 탈바꿈해 개방하고 있다.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주낙영 시장이 민선7기 경주시장으로 선출된 이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면서 역대 경주시장들이 거주했던 시장관사가 29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서는 꾸준하게 관사를 시민에 돌리자는 주장을 제기했는가하면, 일각에서는 국제도시로서 경주 수장의 공간으로 존속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관사의 활용을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던 것이다. 진통을 겪은 경주시의 결정이었던 것만큼 이 공간이 제대로 작동되길 바랄뿐이다. 관사 바로 맞은편에는 경주서 ‘농사짓는 변호사’로 잘 알려진 신평 변호사의 집이 있다. 그는 신동아(2020 8월, 신평의 ‘풀피리’)에서 ‘1994년 한 겨울 삭풍을 맞으며 경주로 내려갔다. ..., 거의 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800평 정도의 터를 마련했다. 200평은 집터로 나머지는 밭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곳에 논을 구입했다. ...,여기서는 경주의 남산과 선도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며 사정동 지금의 자택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고래등 같은 기와가 이어져있는 풍경은 고도 경주의 대표적 동네로 소개해도 좋을 듯// 오밀조밀한 규모의 한옥도 섞여있어 조화 이뤄 이 동네를 찾은 지난 16일은 장맛비처럼 늦여름 비가 쏟아졌다. 한옥이 많아선지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했고 수직으로 낙하하는 낙숫물은 시원해보였다. 골목에선 주민들을 만나기 어려웠고 잠깐씩 소강상태를 보일 때면 한 두 명의 주민들이 다닐 뿐이었다. 첨성로 도로변에 인접한 낯익은 건물 한 동은 1979년 경주시여성복지회관으로 개관했던 건축물(첨성로 29)로 현재는 그 용도를 달리해 경주시도시재생사업본부 등이 들어서 있다. 이 건물이 있는 골목 바로 옆 주택가는 규모가 엄청났다. 잘 지은 주택군이 줄을 지어 나타났다. 건축 당시 고급 자재를 사용했던듯하고 넓은 뜰을 가진 대저택이 많았다. 고래등 같은 기와가 줄지어 이어져있는 풍경은 고도 경주의 대표적 동네로 소개해도 좋을만했다. 지금의 황리단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경주의 명품동네 원형을 고스란히 지녔다. 골목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골목이라기보다는 도로에 가까울만큼 큰 폭의 골목이 널찍하고 시원스러웠다. 널찍한 골목들 사이로 감탄사가 절로 쏟아지는 규모의 으리으리한 저택의 담장은 높아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담장의 높이와 길이만으로도 대저택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야흐로 골목의 주택가 담장 너머 마당에서는 석류와 무화과, 대추가 익어가고 있었다. 각종 유실수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여름꽃의 대명사인 배롱나무와 능소화도 여름의 끝자락을 장식해 주고 있다. 첨성로의 한 주택은 담장이 끝이 없어 보였다. 정원수가 족히 수십년 수령으로 잘생긴 소나무와 담장을 훌쩍 넘기며 자란 배롱나무, 향나무, 석류나무 등은 대저택을 더욱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한편, 마당이 너른 대저택과 함께 오밀조밀한 규모의 한옥도 섞여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집들은 거의 대부분 겹처마로 다락을 지닌 팔작지붕 형태가 가장 많았다. 한편, 신라공고 후문을 마주한 골목에 부엉이 얼굴을 닮은 듯한 지붕으로 단박에 시선을 뺏는 한옥 두 채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 T자형 지붕의 변형으로 보이는 지붕이었는데 고급스럽고 화려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옥 지붕이었다. 동네의 한옥들은 거의 당시 건축한 형식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최근 새롭게 리모델링한 집은 담을 확연히 낮추고 서까래의 니스 칠도 벗겨내 나무 본연의 질감을 돋보이게 한 집도 보였다. -“황리단길이 부상하면서부터 집값도 비싸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예전 인심은 그대로고요” // “마치 신라 귀족들이 느긋하게 살았을법한 동네인 것 같아요” 경주공고 바로 뒷골목에서는 골목의 한 켠에다 플라스틱화분, 물통, 대야 등에 무심한 듯 화초를 키우고 있는 소박한 풍경을 만났다. 마음씨 고운 주인은 화초들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었는데 어지간한 꽃집에서 갖출만한 종류였다. 골고루 알차게도 심어져 있었다. 이 화단의 주인은 이 동네서 10여 년간 살고 있다는 어르신이었다. “봄에 꽃이 만발했었어요. 꽃을 좋아해서 집 앞 골목에 이렇게 화단을 만들었어요. 수돗물보다는 빗물을 받아 물 주고 있어요. 그래선지 몰라도 너무 잘 자라줘요. 화분에 방울토마토 서 너 포기 심어서 한소쿠리씩 따서 경로당에도 나눠먹어요” “이 동네 살기 좋지요. 이웃들이 다들 좋아요.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살아요. 황리단길이 부상하면서부터 집값도 비싸지고 방세도 오르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예전 인심은 그대로고요” 큰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이윽고 경주공고 근처, 이 동네 원형으로 보이는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금성로였는데 지금까지 봐왔던 한옥들보다는 집들이 작고 허름한 듯 했다. 이들 한옥은 세대수가 적었다. 한편, 이 동네 첨성로엔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가 두 곳 있다.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독채 한옥 숙소 ‘소소한옥’과 ‘게스트하우스 고도’가 그 주인공이다. 격조있는 대문에 조릿대로 단아하게 꾸민 정원이 인상적인 ‘고도’와 독채 한옥의 미감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소소한옥’은 경주 대표 숙소로 잘 알려져 있다. 황리단길을 찾았다가 인접한 이 동네를 산책중인 한 방문객을 만났다. “지나가다가 얼핏 보이는 큰 한옥들이 너무 좋아서 이끌리듯 와 봤어요. 골목들이 시원시원해서 대도시에 사는 저로선 너무 부러워요. 그래선지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곳은 마치 신라 귀족들이 느긋하게 살았을법한 동네인 것 같아요. 사는 게 바쁜 우리로서는 마음이 늘 급하기 일쑤인데 이런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황리단길이 지척이고 도심 한 가운데 있는 명품한옥 동네지만 경주시민에게조차 잘 알려져있지 않은 동네였다. 도심속 성(城) 같은 ‘그들’만이 사는 듯한 동네랄까. 사방이 트여있는 입지조건에 시계가 넓고 골목도 넓은데 은밀한 느낌은 무엇일까. 사각지대가 아닌데도 우리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는 듯한 동네의 발견이었다. 방문객의 말이 떠올랐다. ‘신라 귀족들이 살고 있는 듯한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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