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
석미화
이 여백은나의 입덧의 한때다당신과 무더운 밤을 나서면바랭이풀이 물들고달개비꽃이 피는 언덕빼기청수박 한 통당신은 망을 보고나는 투명해지도록 수박을 먹는다그때 아이의 까만 눈이 생기고 둥근 입이 생겼지침샘이 소르르 돋고 솜털이 올라왔지바랭이풀이 우거지고 달개비꽃이 번지는 나의 입덧의 절정이다나는 달을 게워내고당신은 구름을 밀어내고여름밤은 어디가 어딘지 모른 채 흘러가고
-현대판 「서과투서西瓜偸鼠」, 입덧의 추억
겸재의 「서과투서西瓜偸鼠」를 보았는가? ‘쥐가 수박을 훔치다’라는 뜻을 가진 이 그림은 겸재의 70대 후반 작품인데 웅혼한 기세를 가진 장년의 화법에서 벗어나 여성적이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그림은 수박 덩굴 위로 붉게 물든 바랭이풀이, 아래쪽엔 포름한 빛깔의 달개비꽃이 피어 있는 가운데 쥐 한 마리는 수박을 먹고, 또 한 마리는 고개를 쳐들고 망을 본다. (이 그림은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 ‘수박과 들쥐’와도 친연성을 가졌다.)
석미화의 이 시에는 정선의 그림과 같이 바랭이풀도 달개비도 수박도 등장한다. 다만 쥐 두 마리가 남편과 여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유머가 가미된 현대판 「서과투서西瓜偸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시인은 예날 생각을 두고 “이 여백은/나의 입덧의 한때다”라고 진술한다. 사정은 이랬을 것이다. 입덧을 하는 신혼의 시인을 위해 남편은 수박을 먹이러 간다. 그렇다면 그 수박은 어떻게 마련된 것일까? 밭에서 자란 수박이라면 남편은 밭주인이 올까 망을 보는 게 되고, 낮에 사서 바랭이풀이 물드는 언덕배기에 숨겨두었다면 시어머니가 볼까 불안한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전자로 보고 싶다. 아마 시인이 보아 두었던 청수박이 먹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을 것이다.
입덧을 하는 신혼적 시인에게 훔쳐 먹이는 청수박, 어떤 음식도 못 먹던 시인은 남편이 망을 봐주던 덕분에 얼마나 달고 시원하게 수박 속살을 먹었을까. 그 만족감은 행복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놀랍지 않은가. 이걸 먹어서 뱃속 아이도 수박처럼 둥근 입이 생기고, 수박씨처럼 까만 눈도 생기고, 수박 덩굴처럼 팔과 다리에는 솜털이 올라올 것이다. 그 상상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그때 아이의 까만 눈이 생기고 둥근 입이 생겼지/침샘이 소르르 돋고 솜털이 올라왔지” 이젠 큰 몸집을 가지게 된 자녀를 두고 한 추측이라고 봐도 좋다.
그러나 정신없이 먹은 수박이 주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결합하여 이번에는 엄청난, “달을 게워”낼 듯한 입덧을 하게 된다. 이는 입덧의 강도와 함께 도둑질이 훤하게 드러날 거라는 불안까지 들어 있는 표현이다. 그러자 남편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 “구름을 밀어”낸다. 이 표현은 개인의 행위가 자연, 천체의 움직으로 이동하는 역동성을 가진다. 이렇게 언제 간지 모르게 여름밤을 지샜던 기억이 이 시를 낳게 한 동력이다.
입덧의 추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수박이 익어가는 여름날 밤에 떠올려보는 이런 추억은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우리네 마음도 시원하게 씻어내는 청량제가 되지 않을까? 바랭이풀과 달개비꽃이 핀 원두막이라도 찾아가고픈 여름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