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 현장부터 각 교육기관 및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에서 강의 요청을 받는 필자는 재미있는 상황에 직면한다. 재미있다고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들으러 오는 사람들과 억지로 앉아있으며 지루하다는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그룹과 교육 이수를 해야만 하므로 참여하는 그룹, 그리고 나머지는 어떤 교육인지도 모르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에 의해 반강제로 혹은 강제로 참여하는 그룹을 만나는 일을 잘 파악해야 강의에 성공(?)을 할 수가 있다. 특히 질문과 생각, 토론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필자에게는 참여자의 의지를 살펴보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시작 때부터 그룹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그룹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필자가 하는 강의에 관심을 가지고 꼭 수업받겠다고 선택했으므로 목적이 거의 같다. 그래서 대면이건 비대면이건 교육에 참여하는 몰입도가 매우 크다. 교육 이수를 해야 하는 그룹에 갔을 때는 그나마 약간의 선택권은 있는 그룹인지라 조금의 기대를 보여주어서 그나마 낫다. 마지막으로 반강제 혹은 강제로 참여하는 그룹에서는 참으로 난감하다. 시작하기도 전에 빨리 마쳐 달라는 요구부터 한다. 세 그룹을 ABC라고 한다면 A그룹은 강의가 끝나도 금방 떠나지 않고 한참이나 머물러서 질문도 하고, 다른 사람의 질문에도 귀를 기울인다. 마지막 그룹은 주로 학생들이나 기업에서는 사원교육에서 많이 일어난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겠지만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생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복지가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시대에 유아부터 아이들을 위한 교육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일반 성인들의 평생교육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가 많지만 초기 학습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학습자들의 수요나 선택권이 없다. 교육프로그램을 만든 사람과 선택하는 부모에 의해서 학습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흥미가 쉽게 사라지므로 어린 학습자들을 위한 흥미를 유발하는 강화물을 많이 쓰게 된다. 하지만 흥미 유발 강화물의 효력은 딱 그 순간뿐이다. 이런 반복되는 과정에 너무나 익숙한 아이들은 급기야 어떤 교육프로그램에도 주도적인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참여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교육보다는 간식과 선물 등에 관심을 더 가진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에게는 그나마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눈빛이 반짝거리지만 3학년이 지나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육하는 교사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친구들끼리 떠들고 노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렇게 길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어린 학습자들에게 주도권을 주지 않는 교육프로그램들은 아이들의 학습 의지를 점점 더 꺾어 놓기 때문이다. 무엇을 직접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하고 몰입하는 과정도 사라지고 대부분 어른이 거의 완성해 놓은 조립품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대체된다. 그런 과정이 유아부터 계속되다가 보니 혼자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자료를 찾고 또 내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토론을 하는 이런 시간이 낯설고 재미가 없다. 그래서 진지해야 하는 수업들에는 재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어버린다. 아이들에게 ‘재미있었어요’라는 소리를 듣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진짜 학습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아하! 라고 내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 학습자들부터 짧은 시간에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아이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박탈하면 할수록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은 진지한 것을 회피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활동들은 오랫동안 진지하게 앉아서 학습하는 태도를 방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어떤 분이 이야기하는 것을 옮겨본다. ‘중학생 이상이면 강화물이 없이 어떤 프로그램도 지속하기 힘들다’. 필자는 이 학생들이 소위 교육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인원을 충족시켜야 하는 프로그램의 피해자라고 본다.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을 만들어 가는 어른들, 그리고 결국은 성적을 위한 학습 교육에 치중하게 되는 것, 이런 상황들의 피해자가 되어가는 아이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만을 바라보고 쉽게 평가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기업의 사원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비용이 드는 양질의 교육을 많이 만들어서 참여하게 하면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교육을 받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교육의 기회가 반갑지만 의지가 꺾인 사람들은 교육 후에 요구받는 실적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평생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복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때문에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혼자서 되새김질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도적 자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논단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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