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당(石堂) 김상정(金相定,1722~1788)은 사계 김장생의 6세손으로, 젊은 시절 학문과 산림을 즐기며 살다간 인물이다. 1762년(영조38) 41세에 음서(蔭敍)로 선공감감역이 된 뒤 세자익위사위솔·의성 현령을 거쳐 승지와 대사간 등에 이르렀지만, 정조년간 시파와 벽파로 나뉜 정국에 정조와 사이가 나빴던 벽파의 홍인한(洪麟漢)과 가까웠던 이유로 파직되었고, 이후 노론의 인물로 향리에 거처하며 여생을 즐겼다.
저서로 ‘석당유고’가 전하고, 12편의 기문 속에 「동경방고기(東京訪古記)」·「월성수친기(月城壽親記)」등 경주에 관한 기록이 있다. 특히 1760년 2월 12일에 동경을 유람하며 우암 송시열을 모신 인산서원(仁山書院)을 참배하며 노론 당론과 학문적 관계를 확인하였고, 훗날 1832년 옥계서원(玉溪書院)에 우암과 함께 배향되었다.
「동경방고기」는 영조년간 1760년 봄에 저술된 유기로 경주의 산천과 고적의 모습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부친 김영택(金令澤)의 근무지 가수현(嘉樹懸:현재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있을 때 의성현령[聞塑] 백강(伯剛) 김종정(金鍾正)과 함께 합천-밀양-양산-언양을 거쳐 경주 부윤 정존겸(鄭存謙.재임1759. 9~1760. 7)을 찾아가 달성-합천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의 기행문이다. 총 12일 여정 가운데 3일간(2월11일~2월13일) 경주에 머물면서 김종정과 동행하고 유람 내내 정존겸․강호부 등 여러 문인들과도 교유하였으며, 숭덕전․남문루․종각․봉황대 등 경주의 구석구석을 유람하였다.
그는 “경진년 봄. 내가 가수 관청 안에 있을 때 문소 현령 백강 김종정이 경치 좋은 곳을 의논하고자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다. 이때 정대수가 경주 부윤의 자리에 있었기에 경주로 가고 싶으니 좋은 날짜를 정해 보내 달라 하였고, 나는 허락하였다(‘石堂遺稿`卷2, 「文․東京訪古記」,“庚辰, 春. 余在嘉樹衙中, 抵書聞韶令伯剛, 議討一佳處會面. 時鄭大受尹東京, 請往東京, 卜日來眎. 余許諾”)”며 유람 배경을 밝혔다. 당시 의성 현령으로 있던 백강의 유람얘기를 듣고, 상호 간 좋은 경치를 보러 가고자 마음을 먹었고, 마침 정대수가 경주부윤으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겸사로 경주에 갈 계획을 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유람을 주도하였다기보다는 백강의 의도하에 유람이 이뤄졌음을 짐작케 한다.
경주 구석구석을 둘러보았고, 특히 황량한 성터만 남은 반월성을 둘러보고 지난 역사의 무상함과 애상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그 가운데 만월성(滿月城)에 대한 기록이 있다.●김상정의 ‘석당유고’ 「동경방고기」나(김상정)는 “그렇다면 이곳은 금성의 옛터입니다. 저것이 반월성이라면 그 북쪽 토산[土阜]에 둥글게 휘어진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만월성입니다. 곧장 서쪽으로 수풀에 나무가 울창한 것은 진실로 계림입니다(余曰 然則此金城舊基也 彼爲半月 則其北土阜窿然而旋繞者 卽滿月也 直西林木鬱然者 信鷄林也)”라 하였다.김상정은 첨성대가 있는 곳까지를 월성의 일부분으로 보았고, 또한 금성의 옛터로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첨성대에서 반월성의 북쪽을 가리켜 만월성을 언급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 등에 만월성은 월성 북쪽에 있으며, 흙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4945척(尺)이다. 그리고 『연려실기술』에는 주위가 1838보로 기록한다. 모양은 활처럼 휘어져 빙 두른 토축(土築)의 만월성은 아직도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 논란이 진행 중이다. 현재 경주중·고등학교를 포함한 서쪽 일대로 사적 제88호 경주성동리전랑지(慶州城東里殿廊址)로 불리는 이곳은 발굴을 통해 문과 담장 그리고 배수구 우물터 등 전랑의 건축물이 자리한 흔적을 찾았다. 점필재가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경주부윤1486. 9~1489. 2)에게 보낸 시[送洪府尹 兼善] 그리고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의 시[寄慶州府尹黃公㻶二律] 등에도 만월성이 언급되며, 덕봉(德峯) 이진택(李鎭宅,1738~1805)은 익재선생의 유허가 만월성의 동쪽[문충동(文忠洞)에 있다고 언급하며 만월성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직은 이렇다 할 만월성의 위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지만, 경주관련 고전번역이 더 활발히 이뤄진다면 감춰졌던 만월성 등의 위치에 대한 정보도 얻을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 「동경방고기」에 대해서는 2017년 『동방한문학회』에 게재된 본인의 KCI논문 「조선시대 경주지역 유람과 유기(遊記)의 특징 고찰」에 상세히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