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악이 성악과 동등한 수준에 올랐다. 이는 악기의 비약적 발전에 기인한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악기를 알 수 있다.
바이올린은 바로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악기였고, 오늘날에도 살아 남아있다. 하지만 나머지 악기는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졌다. 성능이 더 좋은 악기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쳄발로(cembalo)부터 살펴보자. 쳄발로는 이탈리아어다. 영어로는 하프시코드(harpsichord), 불어로는 클라브생(clavecin)이라고 부른다. 피아노처럼 생겼지만, 기타 소리를 낸다. 피아노처럼 해머가 줄을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뽀족한 플렉트럼이 줄을 뜯기 때문이다. 건반 색깔도 다르다. 쳄발로는 흑백건반이 피아노와 완전 반대다. 또한 쳄발로 건반은 2단이 기본이다. 쳄발로에는 피아노의 페달이 없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유명한 눈싸움 씬에 쳄발로 가 사용되었다. 들어보면, 영락없는 기타소리지만 쳄발로라는 사실, 기억하자. 아는 만큼 들린다.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는 첼로와 완전 비슷하다. 하지만 족보자체가 다른 악기다. 감바는 다리에 끼고 연주한다. 첼로에 있는 엔드 핀이 없기 때문이다. 감바는 손등이 뒤로 가도록 활을 잡는다. 첼로는 손등이 앞을 보도록 잡으니까 연주법이 완전 다르다. 감바에는 기타처럼 프렛(fret)이 그려져 있다. 첼로는 4줄이지만, 감바는 6줄 또는 7줄이다. 첼로는 울림구멍이 f모양이지만, 감바는 c모양이다. 보통 비올라 다 감바라고 할 때는 첼로크기의 저음을 내는 악기를 말한다. 바이올린 크기의 고음을 내는 감바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이올린 크기지만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한다. ‘감바’는 이탈리아 말로 ‘다리’다. 그래서 크든 작든 감바는 다리에 끼고 연주한다. 류트(lute)는 바로크시대에 유행한 기타로 보면 된다. 기타는 6줄이지만, 류트는 6줄부터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울림구멍을 로제트라고 부른다. 내려갈 때 엄지로 뜯고, 올라갈 때 검지로 뜯는다. 오늘날 클래식 기타가 류트대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쳄발로, 감바, 류트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악기다. 이들은 멜로디(주선율)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주로 바이올린이나 리코더의 반주나 화음을 맡았다. 즉, 저음부를 담당했는데 곡 내내 저음이라서 통주저음 또는 계속저음이라 불렀다. 이탈리아어로는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라 부른다. 통주저음은 바로크 음악의 큰 특징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저음 반주시대가 열린 것이다. 쳄발로, 감바, 류트는 각각 피아노, 첼로, 기타에 밀려 사장된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고악기 재현 열풍이 부면서 이들 악기가 복원되고 시대연주 시장도 커졌다. 바로크음악을 현대악기가 아닌 당시의 시대악기의 연주로 듣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