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교를 마주잡고 ‘불국사 추억우체통’ 앞에서 엽서를 쓰는 여행자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불국사박물관에 전시된 ‘경주 불국사 보물’ 사진엽서는 일제강점기까지 전래되고 있었다하니, 추억우체통 엽서쓰기는 마음속 유물로 매겨둔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기억의 꼭지를 따면 튕겨오는 첫사랑 엽서를 베끼듯, 덩달아 낭만의 여행객이 되어 설레었던 추억우체통 뚜껑을 닫고, 흙살 훤한 절 마당을 디딘다. 느티나무, 소나무 나잇살 지긋한 수목들이 펼쳐 논 나뭇잎 향연에 절간이 무성하다. 불국사창건 기록은 고려 1281년 일연스님 【삼국유사】권 제5 효선편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 기록이 가장 먼저이다.
「향전(鄕傳)」내용은 효행, 보시공덕, 업보윤회를 전한다. 김대성을 주인공으로 석굴암 불국사 창건연기 설화를 집필했다.
「사중기(寺中記)」끝부분은 751년 창건하여 774년 12월 2일 대성이 사망하자 국가에서 완성하였다는 짧은 내용이다. 11세기 초 석가탑에서 출토된 중수문서에 의해 창건 년대는 742년으로 수정되었다.【삼국유사】를 근본으로 그 내력을 교정간행 한 18세기 ‘불국사사적’ 원제목 〖신라국동토함산화엄종불국사사적(新羅國東吐含山華嚴宗佛國寺事蹟)〗 문헌에는 방대한 불국사창건내력이 기록돼있다. 고려시대 일연(1206~1289)이 집필한 삼국유사를 조선 1708년 수정해서 펴내었다. ‘계천(繼天)’이 쓰고 ‘재숙(載肅)’이 교정했다한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원제목은 〖경상도강좌대도호부경주동토함산대화엄경불국사고금역대제현계창기(慶尙道江左大都護府慶州東吐含山大華嚴經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創記)〗이며, 조선 1740년 ‘활암(活庵)’ ‘동은(東隱)’이 편찬했다.
불국사창건기록을 신라 23대 법흥왕 528년 이차돈 순교를 추앙하며 처음 창건했다 전한다. 경덕왕시절 752년 김대성의 중창당시 현황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조선후기 불국사의 재건 과정과 중수의 역사연대기록을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해와 달과 별과 구름, 산천초목을 토해내고 머금어 신성한 토함산 기슭에 은혜의 공덕으로 찬란한 불국사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름 어머니다. 세상 안팎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를 위해 은혜를 갚고자한 효의 근본이 천년숨결로 승화된 한국불교성지다.
불교예술문화의 원대한 완성도를 전 세계에 펼치는 품안이 무량하다. 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로 영남지역 80여 말사와 더불어 한다. 경내에는 신라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 7건, 보물 6건, 시도유형문화재 1건 등의 지정문화재가 숨 쉬고 있다. 현재의 불국사 모습은 임진왜란 때 화재가 난 것을 1750년 극락전, 1765년 대웅전, 1781년 자하문을 중수했다.
1924년 일본인들에 의해 석축과 다보탑이 수리되었다. 그 후 1973년 박정희대통령 시절 최종적 보수로 지금껏 천년숨결을 가하고 있다. 청운교⦁백운교⦁연화교⦁칠보교 돌계단을 아우르는 그렝이 기법 석단이 초여름 괄괄한 햇빛과 어울려 빛을 발한다. 그 꼭대기로 범영루 누각이 옛 모습대로 중건되어 떠있다. 공포형식은 다포식 팔작집이며, 수미산형 석주 내부엔 사물의 하나인 큰북이 매달려있다.
범영루와 대칭되는 위치에 있는 목조건축물은 경전을 보존하는 좌경루다. 수미산형 석주가 아닌 팔각주에 연화를 안장시킨 형태다. 불국사 옛 사진들을 들추면 청운교⦁백운교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돌계단을 밟고 붉은 노을빛 서린 자하문(紫霞門)을 거쳐 근심걱정 없는 부처님 나라 불국토에 닿았던 것이다. 그런데 1995년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막아버렸다.
청운교⦁백운교 돌계단을 밟아 자하문을 거쳐 대웅전 드나드는 출입문이기 때문이다. 층계 아래쪽은 홍예 무지개다리 구조로 되어있다. 1919년 일제강점기시절 전체적으로 보수 되었다. 연화교⦁칠보교 다리는 극락전 영역으로 오르는 돌계단이다. 칠보교는 일곱 가지 보석, 금⦁은⦁유리⦁수정⦁산호⦁마노⦁호박을 의미한다. 연화교는 첫발 딛는 층계마다 연꽃잎 큼직한 문양을 음각해 넣었다. 홍예구조는 없으며 1919년 보수되었다. 돌계단을 청운교⦁백운교⦁연화교⦁칠보교 다리 교(橋)자로 칭하는 것은, 극락세계의 또 다른 이름인 구품연지(九品蓮池) 연못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연못의 물을 건너려면 다리역할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도 석단높이에 구품연지 물받이 수구가 드러나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발굴조사 때 대웅전 중앙을 거쳐 관음전 입구까지 수로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원지는 석굴암본존불 발아래 흐르는 지하수이다. 1970년 초반기 불국사복원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건상 구품연지는 복원이 미뤄지게 되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