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에게 여행은 정말 필요하다. 삶의 재충전, 휴식 혹은 개인적인 취향의 추구, 역사·문화·자연풍광에 대한 갈증 등등 여러 가지의 동기와 원인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여행의 존재 이유들이다. 그런데 문화가 다양해지고 취향의 폭이 더 개성적으로 분화한 지금의 시점에서 여행의 존재 이유는 엄청나게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여행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행은 시간과 돈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행할 때 나름 고집하는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 그것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대한 환경이 나의 여행 목적이나 의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조건들’을 일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있어서는 가장 부러운 일이다. 즉 ‘바람 따라 길 따라 떠나는 여행’ 이 필자에게 정말 꿈이 될 수밖에 없다.
여행에 관해서 나름 좀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나의 성향을 고려해 볼 때, 정말 ‘무척이나 감사하게도’ 영국에 살면서 이곳저곳 많이 돌아 다녔다. 내가 ‘감사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 까다로운 나의 기준을 깡그리 무시하고 어떤 곳을 가야만 하는 ‘공적·사적·업무상의 일들’이 정말로 많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좋아서만 하는 여정이었다면 결코 가지도 않아야 될 곳을 일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가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사막에 가서도 갈증이 나면 오아시스를 찾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리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존 본능의 의지에 다름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필자의 까다로운 ‘여행에 관한 여러 가지 기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세월과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인물이나 이야기들’이다. 그 인물이나 이야기들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걸출한 사람들의 대단한 이야기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지역이나 그 동네에서만 접할 수 있는 인물이나 이야기도 상관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에 이야기가 없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말이다.
그렇다면, 세월 속에 간직된 이야기, 사건, 인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를 여행지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여행에 노련한 사람이라면 열심히 자료도 찾고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그쪽에 유능한 길라잡이를 동반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영국에서 이런 걱정을 꼭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바로 ‘PUB’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PUB’이 있다. 그 동네나 그 지역의 모든 역사를 듣고 보고 간직하고 있는 산 증인이 바로 이 ‘PUB’이다. 운이 좋으면 800살, 700살 나이 드신 이야기꾼을 만나게 되고 별로 운이 없어도 300살 200살짜리 이야기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지역을 처음 방문하는 이방인에게 있어서 이만한 복이 또 어디 있을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영국 어디를 가든지 내가 처음 가는 동네가 있다면 가장 먼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PUB’을 찾는다. 이야기, 식사, 맥주 한 잔 그리고 소소한 그 지역의 모든 정보를 한 방에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정이 길어서 그 곳에서 하루를 유숙할 수 있다면, 저녁에 가서 그 동네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면서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줄줄이 꿰고 와야 함은 당연지사이다.
모국을 떠나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듯 고향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고향바라기`가 된다. 평소에 생각을 정말, 많이 해 봤다. 그리고 그 생각에 고민을 얹어 보고 구체적으로 합리적인 방안도 도출해 봤다. 영국으로 건너와서 연구한 분야가 이쪽이고 어차피 업으로 몸담고 있는 것이 또 이쪽이 아니던가 말이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천년고도 경주’에 어째서 ‘100살짜리 식당’ 하나가 없을까? 100살은 고사하고 50살짜리 식당은 과연 몇 개나 될까? 50살짜리는 고사하고 경주에 가서 식사하면서 경주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식당은 과연 몇 개나 될까?
한 가지만 명심하자.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먹는 밥은 결코 그냥 밥만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문 열고 들어가는 식당은 결코 그냥 식당이 아니어야 한다. 바람 따라 길 따라 떠나는 여행객조차도 기대를 안고 길을 떠난다. 천년고도 경주는 바람 따라 길 따라 떠나는 사람들이 주류의 관광객이 분명 아닐 것이다. 천년고도 경주에 100살짜리 식당조차 하나 없는 이 현실을 두고 안타깝게 여길 사람이 분명 나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독자 여러분들과 다음 지면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