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무려 열아홉 글자인 노래가 있다. 가수 강산에가 부른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다. 흐르는 강물을/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도무지 알 수 없는/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그 언제서부터인가/걸어걸어 걸어오는 이 길... 나이가 들수록 더 섹시해진다고나 할까, 아무튼 멋진 그가 아무런 기교 없이 무심하게 툭툭 던지듯 부른다.
우리에게 생선이라고 하면 고등어나 꽁치를 떠올리지만, 서양에서는 연어가 대표적이다. 세계 10대 슈퍼푸드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가 많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노화 예방이나 뇌기능과 기억력 증진에 효과적이라고 연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강에서 태어난 연어는 1년 동안을 강에 있다가 바다로 나가는데,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다시 돌아와 알을 낳는 모천회귀(母川回歸) 본능으로 유명하다. 아무런 가이드나 힌트 없이 스스로 태어난 곳을 찾아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인간은 그럼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불가능한 미션이다. 어른만큼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기는 그 연결이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그래서 무질서하게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절대 시간이 요구된다. 오리는 몇 시간이면 되고, 고양이는 4주 정도면 된다. 반면에 인간은 무려 10년이란 길고 긴 시간이 요구된다. 당구공처럼 주름 없이 반질거리는 뇌가 경험을 축적해가며 주변 여건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문제는 이 결정적인 시기에 어릴 때의 기억 대부분이 소실된다는 것이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어릴 때의 기억이 가지치기당하는 셈이다. 어린 아이랑 원 없이 놀아준다고 파스를 붙여가며 입에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놀아줘 봐야 애들은 전혀 기억 못 하는 이유다! 정작 본인들은 모르는, 그 소중한 추억이 엄마 아빠에게만 남아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여러 갈래 길 중 만약에 이 길이/내가 걸어가고 있는/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거야/걸어걸어 걸어 가다보면/뜨겁게 날 위해/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하고 노래는 희망을 이어가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게 사실이다.
제주 중문해변에서 방류된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가 베트남 동쪽 해역까지 헤엄쳐 갔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게 뭐가 대단하나 싶겠지만, 인공 증식된 새끼 거북이가 엄마 냄새를 찾아 무려 3847㎞ 떨어진 엄마(참고로 아빠는 한국 국적) 고향으로 갔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갓집엘 홀로 헤엄쳐 간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아니 대한민국 여수에서 인공 부화한 녀석이 1만 리나 되는 그 먼 길[母川]을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엄마 냄새도, 정상적이었다면 자신이 태어났을 그 강 냄새도 전혀 모르면서 말이다. 해양수산부가 지어준 녀석의 이름이 ‘KOR0139’이라는데, 연예인 강호동 버전으로 ‘이기 머선 일이고!’ 수준의 사건이다.
연어나 바다거북이처럼 자신의 시작점을 되찾을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비슷한 능력이 있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되돌아오는 우리네 일상(日常)이 그것이다. 모처럼 등산을 가도 정상(頂上)을 찍고는 돌아와 발 씻고 눕는 그 자리가 모천회귀 아니겠나?
그렇게 우리는 하루하루 선(線)으로 된 궤적을 만들고, 시작점과 끝점이 만나 면(面)을 완성한다. 일생동안 그저 앞만 보고 걸어온 것 같은데 어느새 면이 완성된 것이다. 거기엔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인생에서 마지막 걸음을 멈추는 바로 그 자리에 비로소 완성되는 자화상(自畵像)인 셈이다. 비록 주름지고 상처투성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 발로 그린, 하나뿐인 내 얼굴이다.
그래도 나에겐/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내 앞길이 있지 않나/그래 다시 가다보면/걸어걸어 걸어 가다보면/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감사해하겠지... 그저 툭툭 내뱉듯 부르는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난다. 굵은 주름으로 더욱 환하게 웃는 듯한 노인 얼굴이 그 여운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