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裂果)
안희연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흘러간 것과 보낸 것은 다르지만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문지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그래, 다 훔쳐가도 좋아문을 조금 열어두고 살피는 습관왜 어떤 시간은 돌이 되어 가라앉고 어떤 시간은폭풍우가 되어 휘몰아치는지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했다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걸었다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을 구분하는 일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져 있다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았다더럽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다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고나의 과수원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한다눈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
얼마 전엔 벼락을 맞아 터진 살구를 고향집에서 땄고, 또 며칠 전엔 껍질눈이 바알갛게 터진 참외를 받았다. 이번 장마에도 나무 아랜 속절없이 떨어져 벌겋고 물컹한 얼굴로 누운 열과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 어떤 문지기가 작열하는 태양과 그 반대편의 장마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문지기는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이 열과는 당연히 갈라지고 터진 생의 알레고리다. 시적 화자는 “한쪽 주머니엔 작열하는 태양을, 한쪽 주머니엔 장마를 담고” 피하지 않고 걷는걸음을 택한다. 그러다 자고 나면 “뜨거워서 머뭇거리는 걸음과/차가워서 멈춰 서는 걸음” 앞에서 내 분신이라고 해도 좋을 열매들은 터지고 갈라진 것을 본다. 그래, “여름이 내 머리 위에 깨뜨린 계란 같”은 몸뚱이지만 “더렵혀진 바닥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여름은 다시 쓰일 수 있”으니. 아무리 여름을 충실하게 보냈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내가 갑자기 온전하게 성장할 순 없을 거다. 이번 여름이 지나도 여전히 헤매고, 깨질 것이고, 바닥은 더럽혀질 것이다. 그래도 망가질 게 두려워 옹졸하게 몸을 움츠리는 것보다는 더 망가지더라도, 터지더라도 다시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자가 아름답다. 그런 자는 찾아온 슬픔마저도 다독여 제 가슴에 품을 줄 알게 된다.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하고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는 여유까지를 여밀 줄 안다.
“그래 더 망가져도 좋다” 이 말은 꼭 청년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과 장마를 거쳐 온 우리 생의 여름에 대해 “이제는 여름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 위해서, 힘든 여름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말로 손 내밀고 싶다.